본질을 담아내는 형식
사도행전 8장 15절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본질을 담아내는 형식
20260605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가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그 상황을 점검했고, 두 사도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공식적으로 성령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15). 굳이 사도의 대표들이 사마리아로 내려가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장면은 사도행전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성령의 임재라는 본질과 사도들의 확증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방을 향한 복음의 첫 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교회 스스로의 잘못이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적 가치가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형식과 본질에 대한 날선 비판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에 더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까지 일어나고 이제는 교회라는 울타리와 형식조차 외면합니다.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싫다는 이들이 매년 수 천, 수 만 명씩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현상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형식과 본질은 동전의 양면 같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왜곡된다고 해서 형식을 버릴 때, 자칫 본질마저도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반대로 본질을 지킨다면서 형식을 강조하고 강화하면 형식만 남는 모순도 생깁니다. 형식과 본질, 이 둘은 정말 동전의 앞뒤 같아서, 서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교회가 생겼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담아내는 신앙 공동체가 어떤 형식을 통해 안전하고 올바르게 자리 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었던 초대 교회가 첫 번째였다면, 사마리아는 두 번째입니다. 빌립을 통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고, 이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왔습니다. 두 사도는 복음을 확인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 성령 임재를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반(半)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를 시작으로 이제 복음이 전(全) 이방인에게까지 거침없이 전해질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담아내야 할 필요로 인해 어떤 형식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이를 복음의 말씀 - 회심과 세례 - 죄 사함과 성령 임재의 형식과 순서로 보여줍니다. 이를 집행하고 집례하는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이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냥 믿으면 된 것인지, 사람을 보내고 기도하고 하는 게 무슨 번거로운 일이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보호하려면 형식이 필요합니다. 적절하고 올바른 형식을 통해 본질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교회를 거부하는 우리 시대에 교회의 필요성이 너무 가볍게 무시되곤 하지만, 신앙 공동체의 울타리로써 성경적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여전히 교회여야 합니다.
내 신앙의 본질을 담아내는 올바른 형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하루를 시작하는 개인적인 신앙 형식(리츄얼)도 중요하고 공동체로서의 형식도 중요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내 멋대로 하면 폭력이 될 뿐입니다. 신앙을 지켜내는 나만의 형식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신앙 공동체로서 교회를 진지하게 품어가야 합니다. 좋은 마음만으로 되는 건 별로 없습니다. 좋은 마음을 표현하는 태도와 형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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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도의 대표로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한 일은 무엇인가요?
2. 오늘 내 신앙을 지키고 표현하는 나만의 형식/나만의 예식은 어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