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열심
사도행전 8장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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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열심
20260520
스데반의 일로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박해에 앞장섰던 인물이 소개 되는데, 그가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3). 사울은 유대교를 지키고 성전을 지키고자 충성했습니다. 그의 잘못된 열심에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잘못된 열심이 이토록 무섭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요? <노력의 배신>의 저자 김영훈 교수는 노력이라는 말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실제로 노력이 아닌 것을 노력한다며 잘못된 열심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마치 노력하지 말라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로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만 가지고 노력을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한 문장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노력하되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 되어버리면, 결국 그 노력이 자기를 죽이는 일이 되고 맙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대해서 정죄하지 않을 수 있는 바른 가치기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더 진심으로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열심을 따지자면 성경에서 사울을 따라갈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은 스데반의 종교재판과 처형,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예루살렘 대박해 사건에서 사울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는 올곧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단들은 기꺼이 처형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해서 그는 열심히 예수쟁이들을 색출하고 질질 끌어다가 옥에 잡아 넣었습니다. '잔멸한다'는 말은 맹수나 들짐승이 공격적으로 달려들어 물고 흔들어 뜯어버리는 행동입니다. 그의 열심이 들짐승처럼 거칠고 잔인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과연 행복했을까요? 사람을 죽이고 죽음에 몰아넣으면서 마음이 괜찮았을까요? 피를 묻힌 손이 깨끗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은 이런 사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잘못된 열심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그를 찾아와 바른 열심이 되도록 바꾸셨습니다. 열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바른 열심과 바른 노력이 되도록 그 삶의 방향을 바꾸신 것입니다. 사울의 열심이 십자가를 향했을 때, 그를 통해 열방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의 열심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정죄하고 자책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인지를 다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정하지만 예리해야 합니다. 핑계하지 말고 나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돈을 벌려는 열심보다 못한 교회 생활은 아닌가요? 우리 신앙과 믿음이 돈을 버는 철저함보다 나은가요? 심지어 바리새인의 열심보다 못한 것은 아닌가요?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확실하다면, 그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나의 하루가 십자가의 열심이어야 하겠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듯 내가 먼저 변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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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도행전이 표현하는 사울의 열심을 설명해 보세요.
2. 오늘 나의 열심, 십자가의 열심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