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둔 교회
사도행전 7장 48절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하나님을 가둔 교회
20260422
스데반은 이제 결정적인 발언을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48a). 솔로몬도 알고 있었고, 선지자들도 말했던 성전에 대한 진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전에만 계셔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특정 장소에 가두고서는 그 장소를 우상처럼 여기는 지도 모릅니다.
1973년 시인 김지하는 희곡 <금관의 예수>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원주 가톨릭회관에서 막을 올렸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 김지하는 반정부 세력으로 지목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예수에게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을 씌워 권력과 타협하는 종교에 대한 풍자였습니다. 거기엔 사회적 소외자들을 등쳐먹는 경찰과 자본가들이 등장하고,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대학생(지식인), 신부님이 서로 적당히 얽혀 사회 구조적인 악을 지탱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희곡에 나오는 노래 중에 제목이 같은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는 가수 김민기가 불렀는는데, 아픔의 거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수를 갈망하는 내용입니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라는 후렴구가 애절합니다.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김민기 역시 카투샤에서 좌천되었고, 당시 정부에서는 이 곡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스데반의 성전에 대한 설명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브라함부터 시작해 솔로몬 성전까지 쭈욱 훑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봉헌기도와 왕국 이스라엘이 심판받던 때의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해 성전에 갇혀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전은 다윗이 갈망했으나 그의 손으로는 허락되지 않았고, 솔로몬에게 와서야 7년 대공사로 완공했는데, 이것은 야곱의 집을 위한 것(47)이었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막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장소라면, 성전은 다윗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이 요청한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런 성전을 절대화하고 우상화한 성전주의자들 앞에서 스데반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지신들의 권력을 세우고 가난한 자와 약한 자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자기 배를 불린 종교권력자들에게 구약의 선지자와 같이 외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중세의 가톨릭이 그랬고, 지금의 대형화를 추구하는 교회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건물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 삶에, 나의 일상에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지금 내가 선 곳에 성전이며 내 삶이 성소입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수도 없습니다. 나 있는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이 거룩한 일입니다. 이런 삶으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나를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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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사도행전 7장 48절에서 스데반이 '손으로 지은 곳'이라고 한 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2. 내 몸과 삶이 성전이라면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