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공간을 채우는 것

목사wannabe 2026. 4. 20. 04:36

 

 

사도행전 7장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공간을 채우는 것

20260420


스데반은 성막에서 성전으로 옮겨가는 다리가 다윗이었음을 설명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46). 하나님의 처소를 지으려는 마음은 은혜에서 시작했습니다. 한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해서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뜻하는 공간입니다.



건축가 유현준 씨는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동서양의 공간 이해를 단어 풀이로 설명합니다. 공간을 뜻하는 영어 space는 우주를 뜻하기도 하는데, 이는 규칙적인 세상을 의미합니다. 반면 동양의 '공간'이라는 말은 두 존재 사이의 빈 곳을 뜻하는 말이어서 관계를 지칭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것에 더 의미를 두는가에 따라 서양과 동양의 건축은 모양을 다르게 하여 발전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성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스데반은 성전을 짓고자 했던 다윗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46a). 성전은 은혜를 받은 자의 반응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경외의 표현이 성전이라는 건축물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성전은 어떤 규칙 이전에 관계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한 은혜의 표현이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지적하는 것은, 이런 성전이 오히려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은혜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했으나, 오히려 하나님과 성전을 동일시 하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아론의 송아지와 다를 게 없는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로 채워져야 할 성전은 규칙과 제도, 형식이 중심이 되어서 사람들의 고혈을 짜내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스데반의 이런 지적이 오늘날 교회와는 다른 이야기일까요? 교회라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여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이런 관계를 성전으로 제한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성전을 대신하셨고 사도들은 십자가 복음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로서 신앙을,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성전을 지었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우리 삶과 교회, 일상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채워가야 할 성전 된 삶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성전의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과 태도여야 하겠고, 말과 선택이어야 합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채우려 합니까? 어떤 것이 우선입니까? 스스로 묻고 답하는 올바른 신앙이기를 소망합니다.
--

말씀질문

1.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의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2. 오늘 내가 채워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