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속임수
사도행전 7장 39절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후회라는 속임수
20260407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준 모세에게 이스라엘 조상들은 몇 번이나 원망하고 배신했습니다. 스데반은 조상들의 불순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40). 삶이 막힐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애굽을 향했습니다. 이는 후회가 주는 속임수입니다. 애굽의 종살이가 정말 좋았을까요?
추억은 기억에 정서가 덧입힌 기억의 재해석입니다. 그 정서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재해석된 기억은 어느 정도는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해서 같은 사건이어도 똑같이 기억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각자의 정서가 첨가되어서 서로 다른 추억이 되고, 때때로 당사자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기억으로 남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지나온 어떤 일에 대해 후회한다는 건 거의 100% 가정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후회가 주는 속임수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반석의 생수로 기적의 날들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했고 이집트로 되돌아 가자고 했는데, 정말 이집트가 좋았을까요? 이집트에서 조상들은 강제로 부과된 건축과 노역에 짓눌려 그들은 절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했습니다. 물론 제국의 압도적인 권력과 질서, 고정적인 먹거리,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식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규칙성이 몸에 베어 안정감으로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좋았다면 그토록 절규했을까요? 후회는 이런 고통의 현장은 감추고 가짜 안정감으로 미화합니다.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고 속입니다. 이집트로 돌아 간다면 분명 이스라엘은 그전보다 더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 나쁘면 더 나빴지 좋아질 이유도, 명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말합니다. 애굽이 더 좋았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신앙생활의 여정이 이와 비슷합니다. 기쁨과 감사로 구원을 고백하지만, 사실 믿음대로 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타협할 일들이 너무 많고 죄의 미혹과 유혹은 더 교묘하고 다채롭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믿음으로 살려면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내적 갈등도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의 불화도 생깁니다. 이런 갈등과 불화, 미혹을 마주하면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데, 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후회입니다. 모세를 원망했던 이스라엘처럼 마음이 애굽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후회가 주는 감정, 그 추억은 미화된 속임수일 때가 많습니다. 덧입혀진 감정에서 한 걸음만 떨어지면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후회한다면 되돌아 갈 게 아니라, 더 나은 지금을 살아내는 것이 지혜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수없이 후회하며 모세를 거절했습니다. 이 모습이 익숙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원망이 비슷합니다. 믿음의 길을 흔드는 후회의 순간들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고, 되돌려도 다시 후회하고 말 것입니다. 후회는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것은 후회가 아니라 성찰이며,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이전 것이 없습니다. 믿음의 성도에게 새 삶과 새 날을 주셨으니 후회하지 않도록 전진할 뿐입니다. 오늘도 십자가로 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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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질문
1. 출애굽 이스라엘의 거절과 후회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2. 요즘 후회하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통해 깨달아야 할 오늘의 전진은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