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흙을 빚는 사람들

목사wannabe 2026. 3. 2. 04:55


[사순절 40일 묵상 : 출애굽의 길] 11_ 출애굽기 1장 14절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홁을 빚는 사람들

20260302

이집트는 제국의 야망으로 하피루들에게 강제 노역을 부과합니다. 이 노역은 매우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짜인 폭력적 착취였습니다. 그들의 말이 이렇습니다.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14). 하나님의 백성이 힘에 굴복당하고 짓눌린 처절한 현장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하실까요? 그 답이 출애굽입니다.

 

본래 하피루는 노예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헌과 근동의 고고학적 자로에 등장하는 하피루는 일종의 전문 기술직으로 살았던 하층 노동 계층을 뜻합니다. 사유재산처럼 취급되던 노예와는 다르게,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는 반자유 형태의 공공근로에 가깝습니다. 출애굽기 1장 14절에 언급된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 그리고 농사는 지리적으로 나일강 하류의 삼국주,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살던 고센 땅의 환경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속에서 고난 당하며 오랫동안 종살이해야 했습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명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비인격적이고 폭압적인 강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된 현실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명이 무시되고 존귀함이 짓밟히는 현실에서의 구원이 절실합니다. 제국의 폭력 속에서 구원은 무엇일까요? 이 분별과 답이 중요합니다. 제국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은 제국에서의 성공이 아닙니다. 권력이 쉽게 무시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상부를 차지하는 게 아닙니다. 기득권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사적 답이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답은 아닙니다. 하늘의 답은 달랐습니다. 철저하게 타락한 권력의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그 질서에서의 탈출이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하나님은 고된 강제노역으로 매일 피눈물을 흘리며 흙을 빚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 질서 바깥으로 빼낼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흙을 빚어야 했던 낮은 자리, 사명이 짓밟힌 낮은 자리였습니다.

 

고난이 곧 구원이 된다는 단순한 도식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고난에서의 구원은 그렇게 단순하고 간편한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다. 무너졌고 처절했고, 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눈물과 울음이 그 흙반죽 속에 섞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뜻이고, 누군가는 지금도 그 고난의 시절을 겪고 있다는 뜻입니다. 처절한 고됨이, 억압과 착취가 지금도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밑바닥, 땅바닥에서부터 구원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출애굽. 즉, 권력의 질서에 대한 탈출이고, 세속 가치에 대한 유월, 넘어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주듯, 권력에 편승하거나 맞서는 게 아닌, 넘어서는 것입니다. 트랙에서 1등 경주마가 되는 게 아니라, 그 트랙을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생이 흙을 빚으며 종처럼 살지만, 그 낮은 자리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넘어서게 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손이 새롭게 빚어주실 것입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영생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