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루의 길
2026 사순절 [출애굽의 길] 09 하비루의 길에서
출애굽기 1장 10절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2026 사순절 [출애굽의 길] 09 하비루의 길에서
고센에 거주하던 야곱의 아들들, 즉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제국은 이주민들, 전쟁 포로들에게 고된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일은 삶의 정체성입니다. 일은 부과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 분별이 중요합니다.
출애굽의 무대가 되는 신왕국 이집트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습니다. 제18왕조를 계승한 19왕조, 20왕조는 군사력과 행정력, 그리고 거대한 건축 사업을 통해 이집트의 황금기를 완성해가 갑니다. 특히 람세스 2세의 때는 이집트 제국주의의 절정이었습니다. 당시 국제질서를 양분하던 히타이트 제국과 벌인 카데시 전투는, 승패를 떠나 이집트의 위상을 과시한 상징적 사건이었고, 이후 체결된 평화 조약은 람세스가 단순한 정복자를 넘어 국제 정치의 중심인물로 자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강력한 이집트 제국을 떠받치는 힘은 강한 군사력과 외교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이집트의 대규모 건축은 물론, 부강한 국가의 기반이 되었던 이들은 하피루(Hapiru)라 불리는 노역 집단입니다. 18왕조 이후 대대적인 정복 전쟁은 수많은 이주민과 전쟁 포로들을 낳았고, 이들은 이집트의 노동력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들을 하피루라고 불렀는데, 이는 특정 민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계급을 뜻하는 말로 노예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하피루 중에는 과거 힉소스로 불렸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센에 머물던 이스라엘 자손들 역시 이 강제 노역에 차출되어 고된 노동을 짊어져야 했을 것입니다. 사실 일은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사람의 역할입니다. 동산에서 아담은 일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고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창세기의 해당 문맥과 구절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더라도, 아담이 어떤 일과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죄로 인해 수고와 애씀, 삶의 고된 무게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즐거운 사명이 아니라 강제 노역으로 전락된 것, 이것이 출애굽의 배경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스스로를 히브리라 소개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강을 건너왔다는 샘족어 ‘이브리’와 강제 노역 집단인 이집트의 ‘하피루’와 연관성을 지닙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자신을 일하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제국의 노역에 짓눌리고 내몰린 이들의 아우성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일하는 존재로서 신앙인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유용한 타자로서 세상을 이롭게도 하지만, 때로는 하피루처럼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떠받치기도 합니다. 그 일이 강제이든, 필연이든 위치는 다르더라도 사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하셨습니다. 사명에 깨어 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일이 좋든 싫든 상관없이 그것은 빛입니다.
일은 모든 삶에 주어진 필연이어서, 갓난아기도 먹으며 울며 자신의 일을 합니다. 그게 아기에게는 가장 절실한 일이요 사명입니다. 해서 울어도 먹기만 해도 아기는 빛이 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본래 그렇다는 걸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사명으로 받아낼 때, 비록 그 일로 형체를 잃을 만큼 굽어지고 낮아지더라도, 그런 하루는, 그런 날들은 쉽게 꺼지지 않는 빛이라 하겠습니다. 출애굽은 어둠 같은 곳에서 빛처럼 밝았던 이들에게서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