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도 길이 된다
사도행전 7장 29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방황도 길이 된다
20260202
스데반이 길게 설명하는 모세는 실패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졌고, 건짐 받았으나 또 다시 외면 당합니다.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29) 자기를 거부하는 히브리 사람들을 두고 모세는 도망쳤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이름 없이 40년을 삽니다. 방황인가요? 맞습니다. 무려 40년의 방황입니다. 하지만 필요한 방황입니다. 이 방황이 길이 될 것입니다.
<헤멘 만큼 내 땅이다>의 저자 김상현 작가는 근래 몇 년 간, 에세이로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뛰어난 저자입니다. 따뜻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문장에 많은 젊은이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책의 서문에서 김상현 작가는 "이 책에는 그 막막함 속에서 길을 잃고, 넘어지고, 기꺼이 헤매었던 저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중략)... 출판사들로부터 70번도 넘게 원고를 거절당했음에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그 과정은 확신보다 흔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화려한 배경 하나 없이 세상에 부딪혀야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카페에서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글을 쓰며 보냈던 날들. 그럼에도 수십 번 거절당했던 경험들. 저자는 이 모든 방황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걸었다고 말해줍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너무 확신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히 확신이 우상이 된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생은 불확실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맙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은 확신보다 불확실이 더 지배적이고, 인생은 불확실의 연속을 부딪히면서 나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은 확신을 줄까요? 그렇기도 하지만 또한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은 궁극적 결론을 알려주지만 그 여정은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 긴장이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정(과정)이 중요합니다. 모세는 방황했지만 하나님은 그 방황마저도 길이 되게 하십니다.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29) 제국의 왕자가 사람 하나 죽였다고 별 일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모세는 그 일로 인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추론할 뿐이지만, 아마도 구원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던 모세의 내면이 무너지고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도망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명에서 벗어난 방황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길이 될 것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도망치고 방황한 길 그대로, 모세는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더 큰 이야기입니다.
너무 늦은 거 같고, 나만 뒤처진 것 같아 흔들릴 때. 필요한 것은 당장의 어떤 확신보다 더 길게, 더 깊게 바라보는 마음의 시야일 거라 생각합니다. 방황도 길이 되게 하십니다. 복음의 결론은 이미 예수님으로 완성되었으니, 무너질 일은 없습니다. 임마누엘은 이미 이루신 약속입니다. 이 믿음으로 방황하는 지금의 삶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들에 성실하면 됩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방황하면서도 꽉 찬 하루를 보내는 것. 오늘을 그렇게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주님 앞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