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때를 찾아서
사도행전 7장 23절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나의 때를 찾아서
20260126
스데반은 모세의 삶을 40년씩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가 태어난 후 이집트에서 도망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23). 이미 모세의 전 생애를 아는 우리는 40이 되었다는 말에서 모세의 실패를 떠올리는데, 당시의 모세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때가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나 달랐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그 깊이와는 다르게 상대를 나무라거나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 되어버렸습니다. 철학자의 말에 담긴 지혜는 오늘날 자기를 잊어버리는, 혹은 잃어버리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등불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기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MBTI가 유행하고 거의 모든 관계를 이런 MBTI로 표현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16개의 단편적인 분류로 너와 나를 규정할 때, 우리는 각각의 인격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덮어버리고 마는지, 해서 피상적인 문자 4개로 얼마나 가벼운 관계가 되고 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비교가 일상이 되어버렸고 화려한 성공이 욕구가 되어버린 시대에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내가 어떤 존재인지, 해서 어떤 시간을 사는지 우리는 진지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을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을 보는 길을 제시합니다. 더 큰 이야기, 더 본래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함으로써 그 안에서 나 자신을 깨닫고 나라는 인생의 시간과 의미와 본질을 마주하게 합니다. 스데반이 조상들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유대교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에 코 박고 있지 말고 장구한 구원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지금의 나로 이어가고,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사의 모범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았고, 버려졌으나 건짐을 받는 역설과 역전의 삶, 구원받는 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집트에서 능한 사람으로 자라난 모세는 자기의 때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구원자가 되고자 했는데, 그때가 40세였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23). 우리가 아는대로 모세는 바로 이 때 실패합니다. 초라한 도망자가 됩니다. 자기의 때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그때는 첫 번째 출애굽의 때였습니다. 기대와 달랐고 계획과 달랐습니다. 빛이 되고자 했으나 어둠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다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바라는 나의 때보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하늘의 때에 서신을 두는 것입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때도 좋지만, 하나님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간격을 내게로 좁히려 하면 괴롭고 불안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때로 끌어당기려 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의 삶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직하게 하나님의 때로 이끌어 가십니다.
해서 우리의 몫은 하나님의 때에 마음과 시선을 두는 것, 더불어 그때를 위해 지금의 나를 바르게 채워가며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의미가 되고 힘이 되고 단단한 버팀이 될 것입니다. 모세를 단단하게 빚어가신 하나님은 오늘의 나도 그렇게 빚어가십니다. 그러니 섣부른 원망과 불평이 있더라도 오늘 더 단단해지십시오. 오늘 내 신앙의 성실을 쌓으십시오. 해야 할 기도를 담아내고 묵묵히 더 깊어지십시오. 나의 때라는 건 이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