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그대, 아름다운 사람

목사wannabe 2026. 1. 21. 00:18
 

사도행전 7장 20절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그대, 아름다운 사람

20260121

 
 

요셉 이후 4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드디어 하나님은 요셉처럼 당신께서 선택하신 한 사람을 등장시키셨습니다. 그가 모세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설명하는 모세의 등장이 독특합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20).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표현은 스데반의 것입니다. 그는 출애굽기 2장 2절의 '토브'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즉, 스데반은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온전한 존재로서 모세를 설명합니다. 이것이 성도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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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약 70%정도의 영향을 준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EBS에서는 오래전에, 동일한 사람에게 각각 상반된 다른 옷을 입히고는 첫 인상의 호불호를 검증했는데, 같은 사람인데도 깔끔하고 빼어나게 입은 모습이 (당연하게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외모 중심의 판단이 얼마나 비인격적인가를 설명했는데, 사실 이런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잘 수용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꾸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어느덧 15년이 넘었습니다. 단지 예쁘고 멋있어 보이려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가꾸는 사람이라는 자기 관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이런 기준은 문화마다, 시대마다 제각각이라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 모호합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어떤 것 하나가 기준이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외모로 판단하는 일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정말 이상한 평가 기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조금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경에는 인물 묘사가 간혹 등장하는데, 이는 문자적 이해보다는 그 시대의 관용구에 가깝습니다. 눈이 나쁘다는 건 총명하지 않다는 표현이고, 얼굴이 붉다는 건 생기 넘치는 건강함을 뜻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스데반이 표현하는 모세는 아름답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20). 이 설명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습니다. 먼저는 '아름답다'의 뜻입니다. 이 말은 예쁘고 우아하다는 뉘앙스를 바탕으로 우월하고 탁월하다는 관용어입니다. 모세의 탄생을 전하는 출애굽기 2장 2절은 모세를 잘생겼다고 했는데, 이 역시 '토브'(좋은)를 의역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옳은 자, 하나님이 보실 때 그의 뜻에 합당한 우월한 종이 바로 모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수식을 받는 모세가 아기였다는 점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무엇을 보고 탁월하고 우월하며 하나님께 옳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제아무리 귀여운 아기여도 그런 수식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는 존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는 바구니에 담겨 곧 버려질 테지만, 그것조차 합당하고 온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맞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고, 이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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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도로서 우리는 존재로 인정받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때로는 잘 안 풀리고 세상에서 박한 평가를 받을지라도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은혜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의 영광을 덧입은 자로 살게 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내가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아름다운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