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죽음으로 표현한 약속

목사wannabe 2026. 1. 16. 07:42

 

 

사도행전 7장 16절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죽음으로 표현한 약속

20260116

 
 

스데반은 야곱이 이집트에서 요셉과 재회한 이후 그 삶을 축약하고 곧바로 그들의 죽음과 장례로 이어갑니다.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16).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낯선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고, 죽어서도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묻혔습니다. 이는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했다는 것을 넘어, 죽음으로 표현한 약속입니다. 나에게 주신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 믿는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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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특징 중 하나는 약속입니다. 언약이라고 표현하면 우리에게 더 익숙한데, 언약이든, 약속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묶인다는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찾아와 약속하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반면 이 약속의 상대방인 인간은 죄와 탐욕으로 늘 약속을 깨뜨리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신실하게 약속을 이어가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직접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었을 텐데, 그는 물려받은 약속을 잊지 않았고, 나아가 자신의 죽음으로 이 약속을 후대에게 물려주기를 바랐습니다. 해서 창세기가 전하는 요셉의 유언은 자신의 유골을 반드시 가지고 가서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는 것이었고, 400년이 지나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 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갑니다. 스데반은 이방 땅 이집트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이 삶을 짚어가며 설명합니다.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16).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이 구절은 자칫 야곱이 세겜에 묻힌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새번역 성경은 조금 더 정확하게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나중에 세겜으로 옮겨서, 전에 아브라함이 세겜의 하몰 자손에게서 은을 주고 산 무덤에 묻혔습니다"(새번역 16절).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헤브론에 묻혔고,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여 분배받은 땅 세겜에 묻혔다고 여호수아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향한 절대적 신뢰와 소망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죽음으로 표현한 이 약속을 볼 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허술하고 나약한가를 깨닫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새해의 다짐과 새날의 소망이 흐릿해졌습니다. 이런저런 핑계가 여전히 앞섭니다. 날도 추우니 따뜻한 이불 속이 더 좋습니다. 변명과 타협이 옷이 되었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말이 왕관이 되었습니다. 400년 후에나 이루어질 약속을 표현하고자 자신의 죽음과 유해를 증표로 삼았던 요셉과는 너무 멀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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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이미 완성하셨습니다. 자기를 찢어 성육신하신 주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길, 십자가의 길로 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사랑의 초청입니다. 이 사랑이 오늘도 나를 약속의 당사자로 세웁니다. 해서 오늘을 약속의 하루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런저런 상황도 있고, 저마다의 사정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약속의 하루여야 합니다. 죽음으로 표현한 약속을 기억하고 나의 하루를 약속 위에 세워가야 합니다. 느려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때가 이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