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성경이 증언하는 부흥

목사wannabe 2025. 12. 18. 05:07

사도행전 6장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부흥

20251218

 
 

공동체의 불균형으로 인해 사도들과 공동체는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갈등이 해결되고 구제와 말씀에 균형이 회복된 결과를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 이것이 부흥입니다. 인원이 많아지고 교회 건물을 크게 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시즌 행사 성격으로 특별 집회를 할 때 '부흥회'라고 쓴 데서 알려졌습니다. 연간 행사로 외부 강사를 모셔 특별하게 집회를 했으니 많은 사람을 모으려 했고, 그 결과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당연히 평소보다 헌금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눈에 띄는 양적 증가를 부흥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찬양의 제목과 가사로 '부흥'이 널리 퍼지면서 하박국의 말씀 한 구절이 유행처럼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마다 부흥을 노래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부흥은 교회 용어임에도 여전히 사람을 모으고 커지는 것을 뜻하는 표현으로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성경적이어야 할 교회에서 성경의 왜곡이 빈번하게 자행된 것입니다. 하박국이 말한 부흥은 회개와 깨짐과 순전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아지고 적어지고는 본래 부흥과는 그다지 연결점이 없습니다. 다만 부흥의 결과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미스바처럼, 부림절의 에스더와 유다인들처럼 말입니다. 이때 모인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사로잡힌 성도입니다. 세상의 가치, 세속이 추구하는 성공과는 거리를 둔 존재들입니다. 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의 부흥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구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도들이 다른 일보다 말씀과 기도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를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 세 가지 결과가 나왔습니다. 먼저 말씀이 왕성해졌습니다. 이는 미완료 시제로 계속해서 말씀의 권세가 나타나고 있음을 뜻합니다. 아마도 이후 스데반의 설교를 고려할 때 이 말씀은 구약의 메시아가 예수임을, 하나님의 구원이 십자가의 도와 부활임을 연결하는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이 복음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이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사도행전은 두 번째 결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다.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닙니다. 제자가 많아진 것입니다. 사도와 구분하기 위해 제자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 이해하는데, 말씀에 헌신하고 복음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사장의 회심입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변화인데, 축의 이동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사람들 중에 십자가 복음에 회심하는 이들이 다수 생겨났습니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종교로 포장한 욕망과 탐욕이, 권력이 무너지고 뒤집어집니다. 부흥은 이런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이 이것입니다. 

​지금의 교회가 직면한 현실에서 부흥이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사람이 많아지고 재정이 커지고 예배당을 건축하는, 세속적 성공과 별 다를 게 없는 부흥은 아닙니다. 이미 그런 식의 교회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부흥은 여전히 강력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가 깨어날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가 전복되고 복음의 오래된 새 길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이 이 부흥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부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