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흔드는 갈등
사도행전 6장 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공동체를 흔드는 갈등
20251210
외부의 핍박을 이겨낸 신앙 공동체는 점점 더 그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많아져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 공동체에 불공평한 일이 반복해서 생기면서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구제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 모습이 우리 시대의 교회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교회는 관계 시스템이다>의 저자 로널드 리처드슨은 교회에서 사람들의 만남이나 관계, 조직, 심지어 행정까지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소가 정서라고 설명합니다. "평상시에는 모든 것이 좋고 사랑스러워 보여도, 자신의 정서적 욕구나 필요가 도외시되거나 충족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종종 긴장과 갈등, 분규를 경험하게 된다." 교회 현장은 복음의 선한 의도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떠난 이들은 하나같이 교회에서 받은 상처를 말하는데, 이때의 상처란 거의 100% 관계의 상처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주 싸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된 교회인데도 왜 갈등과 상처가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되는 것일까요? 단순히 죄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은 이해도 해결도 미흡합니다. 저자는 그것이 정서적 욕구와 불충분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를 건강하게 해소하기 위해서 저자는 목회자와 리더십의 지속적인 성품 훈련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공동체의 내적 갈등과 건강한 해소를 정말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먼저는 갈등의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외적 핍박을 이겨낸 공동체는 더욱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갈등의 핵심 원인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이 보여주듯, 어느 정도의 소규모였을 때 신앙 공동체는 복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면서 지도력의 빈틈이 생겼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결국 갈등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심각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 원망한다는 표현이 무겁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지도력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의 뉘앙스이기 때문입니다. 지도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제라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한쪽으로 치우쳐지면서 불공평, 불공정이 되고 만 것입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이럴 수 있다는 갈등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모일수록 이런 갈등은 더 빈번하고 심각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 문을 닫아야 하겠습니까? 신앙 공동체는 갈등이 올 때마다 충돌하고 반발하기 보다는, 그 맥락을 겸손히 이해하고 받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갈등 해소의 첫 걸음입니다.
서로 불평할 수도 있는 게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불평하는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할 정도라면 어떤 건강한 의견과 의결이 가능할까요? 독재나 지배는 교회의 바른 형태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서로의 정서를 헤아려 보는 넉넉함입니다. 이 넉넉함이 갈등 해소의 출발점입니다. 해서 조금 더 마음을 넓히면 좋겠습니다. 더 섬기고 품어내라는 십자가의 뜻이라고 여긴다면 좋겠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님처럼, 발을 씻기신 주님처럼 내가 조금 더 낮아지고 넓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신앙 인격이며 성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