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종교적 가스라이팅

목사wannabe 2025. 11. 21. 08:35
 

사도행전 5장 28절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

 

 

 

종교적 가스라이팅

20251121

 
 

스스로 재판정으로 들어온 사도들에게 성전 권력자들은 말합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28). 권력으로 협박했다가 먹히지 않으니 이제는 괜한 피해의식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것처럼 말합니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종교가 가스라이팅이 될 때 그 피해는 심각합니다. 인생을 옭아매 자유함이 없고 심리적인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려는 의도나 행동'입니다. 해서 가스라이팅은 수평적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수직적 위계를 만들어 권력에 굴종시킵니다. 본래 영화 <가스등>에서 시작된 말로, 가스등불의 밝기를 낮춤으로써 불안함에 빠지게 해서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만들고, 그런 불안한 상태를 이용해 내 말을 듣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타인의 취약함을 틈 타 나의 의견을 주입해서 내 말만 듣게 만듭니다. 이런 식의 가스라이팅은 기독교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에서 주로 사용했는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역시 종교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비판합니다. 수직적 권위 구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특정한 권력자의 말을 신격화 하듯 떠받들면서 비상식적인 선택과 행위를 신앙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본래 절대의존의 특성을 가지기에 신에게 마음과 삶을 드리는 것은 종교의 본질이겠으나, 신을 대리한 특정인이 의존의 대상이 되고 그런 구조와 관계를 만들 때 교회는 우상이 됩니다. 일종의 종교 가스라이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진리의 자유함이 아니라 교회 구조에 질질 끌려다니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을, 때로는 협박 비슷한 강요를, 어떤 때는 피해를 준다는 식으로 심리적 공격을 가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대다수가, 무엇보다 대형교회가 이러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가스라이팅한다는 비난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돌팔매질 같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유튜브 잘잘법에서 이러한 종교 가스라이팅에 대응하려면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신앙을 끌려다닐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참 신앙은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자유하게 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도들을 협박하는 이들은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너희 때문에 손해를 본다, 유대교가 피해를 본다고 말합니다. 힘으로 되지 않자 심각한 피해를 본 것처럼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이 모습이 오늘날 교회일 수 있습니다. 혹 우리가, 또는 교회가 이러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내 말을 들어야 하는 너로,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으로 너에게 강요할 때, 그 강요에 신앙을, 하나님을 들먹거릴 때 우리는 종교적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 관계에서도 이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불 같은 혀가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말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강요하려는 태도는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인격적 성숙도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진정한 믿음은 묻고 경청합니다. 그 마음을 얻고자 섬기고 품어갑니다. 십자가 복음은 나를 내어줌이지, 강요하고 혐오하며 정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서 마음을 얻고 싶다면 더 사랑하십시오. 더 진심으로 기도하며 섬기십시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만이 유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