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경계를 넘는 그리스도인

목사wannabe 2025. 11. 11. 05:12

 

 

사도행전 5장 16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경계를 넘는 그리스도인

20251111

 
 

복음의 영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전 안이 아니라, 성전 바깥에서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16). 예루살렘 부근, 그러니까 성전을 벗어난 그 주변 마을에서 놀라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복음은 성전의 경계를 넘어 삶의 현장으로 흘러갑니다. 촛대를 옮기시는 것처럼 복음의 현장이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찾아서>에서 변방과 경계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다. 역사에 남아 사표가 되는 사람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중심과 변방은 언제나 긴장 관계입니다. 중심은 담을 쌓아 기존의 것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반면, 변방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역설적으로 실제 역사는 변방이 중심을 탈환하고 그후에 고여 또 다른 변방에서 신흥세력이 일어나는 순환이었다는 것입니다. 해서 저자는 공간적 변방을 찾아보니 실제로 중요한 것은 변방성이라고 설명합니다. 변방은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기존의 신념과 가치, 경계가 주변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하는데, 이것을 받아들이면서 고유의 성숙을 이뤄가는 것이 변방성입니다.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이기도 합니다. 해서 누구나 변방성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여러 책으로, 자신의 삶으로 강조했습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복음의 활동 역시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아니라 그 주변으로, 경계를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16). 기존의 가치는 성전, 즉 예루살렘이어야만 했습니다. 거기만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오직 성전에서만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예루살렘을 넘어 그 부근의 마을들로 뻗어갑니다. 중심축이 옮겨갑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갇힌, 성전과 건물에 갇힌 구원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땅끝까지 복음과 구원이 확장될 것입니다. 복음의 원형과 신앙공동체의 본래 모습이 이러했다면 오늘날은 다를까요? 거대하게 세워진 교회 건물 안에서의 활동과 예배도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필연적으로 복음은 교회 안에서 교회 바깥으로의 확장성을 가져야만 합니다. 교회의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가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그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거기가, 그 관계가 성전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건물에 갇힌 복음으로는 안 됩니다. 경계를 넘어 삶의 자리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 안으로 모이라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은, 교회 바깥으로, 경계를 넘어 일상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복음입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너와 나의 관계가 교회의 본질입니다. 해서 오늘 내가 교회여야 하고 나의 삶이 경계를 넘어 세상 속에서 빛나는 복음의 불꽃이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이 전해져야 합니다. 내 표정과 말투, 선택과 행동이 모두 복음이어야 합니다. 나만 좋은 복음에서 너를 향한 복음이어야 하겠습니다. 경계를 넘는 부활의 삶이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