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Fontes
사도행전 5장 11절
온 교회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Ad Fontes
20251104
아니니아에 이어서 삽비라 역시 베드로의 심판 선언에 그대로 혼이 나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죄가 처리되었습니다. 이 일로 교회만이 아니라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 두려움(경외)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온 교회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니라"(11).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식하는 것, 동시에 죄인인 나를 인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Ad Fontes 는 이 경외함이어야 합니다.
박재연 소장의 <조용한 회복>을 보면, 첫 장이 "매로 다스려야 하는 사람은 없다"입니다. 어렸을 때 매 맞으면서 컸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저자는 상담가로서 조언합니다. 자녀를 매로 키운다는 건 큰 잘못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부모는 애착 대상으로서 안정적인 정서 기반을 제공해야 하는데, 부모가 아이를 훈육한다면서 지나치게, 또는 비합리적으로 매를 들면 아이의 정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기에 단단하게 안아주는 존재가 되는 게 더 좋다고 권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인격적 대화가 우선이어야 하고, 그 다음 서로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이 선행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저자의 글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고민해 봅니다. 초대 교회에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서로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서로 모이는 것이 감사였고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심판과 죽음이 임했습니다. 변명을 들을 새도 없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고 말았는데, 이 사건을 통해 온통 두려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온 교회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11)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때의 두려움은 공포감과 불안함만이 아니라, 경외 즉 존경과 동경이 함께 내재된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간절히 가까이 하고 싶지만 정말 조심스러운, 무섭기도한 감정을 뜻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Ad Fontes 를 외칠 때, 저는 사랑과 헌신, 기쁨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경외는 사라지고 온통 다정과 따뜻함만 강조하고 그런 것들만 요구할 때 교회는 무질서하고 무분별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이 사건이 교회만이 아니라 교회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경외함을 전했다고 증언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무시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교회에 경외함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하면서 회개와 경외함은 없고 고작 인원 불리기, 헌금 늘리기에 애쓰고 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은 심판이 먼저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대 교회가 교회의 원형으로서 본받아야 할, 회복되어야 할 모델이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와 신뢰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삶에, 교회 안에 거룩한 경외가 회복되는 게 우선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협하고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십시오. 오늘 경건의 모양을 넘어 경건의 능력으로 사십시오. 사소한 하나까지도 믿음과 복음이 되게 하십시오. 대충 넘기고 미루지 말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순간마다 주의 임재를 인식하십시오. 하나님이 내 옆에서 보고 계신다면 그렇게 행동하겠습니까?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