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사라진 것
사도행전 5장 5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교회에서 사라진 것
20251029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통해 죄의 선언이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아나니아가 죽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 이제까지 사랑과 섬김, 아낌 없는 헌신으로 소개된 초대 교회에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물론 불안과 근심의 어두운 두려움은 아니겠습니다만, 초대 교회에는 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잊어버린 하나입니다.
AD FONTES! 이 말을 직역하면 '근원으로 돌아가자'인데, 출처는 라틴어 성경의 시편 42:1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는 표현에서 '찾는다'는 말이 아드 폰테스입니다. 지난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었는데요, 이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이 바로 'Ad Fontes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도행전이 강조하는 바, 초대 교회처럼 소유를 나누고 가난을 해결하는 사랑의 공동체는 자본주의에 뿌리 깊이 세워진 오늘날의 교회와 교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이상적입니다. 누구도 내 소유 전부를 내어 놓지 못 할 것이고, 그것을 강제하지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빨갱이 운운하며 교회가 나서서 재산을 지키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성령 충만과 말씀 중심의 삶, 신앙 공동체 중심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라 이해합니다. 초대 교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교회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사랑도, 희생도, 순전함도 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두려움을 잊었습니다. 베드로의 추상 같은 죄 지적에 아나니아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혼이 떠났습니다. 이 일로 공동체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5). 이 두려움이라 표현된 '포베오'는 공포증(포비아)이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저 무섭고 피하고 싶은 공포만이 아니라, 경외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기꺼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잊어버린 것 하나가 바로 경외함입니다. 위로하고 공감하고 사랑하자는 말은 많은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습니다. 해서 교회가 불법을 자행합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힘으로 누르거나 쪼개집니다. 목회자들의 각종 스캔들과 범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말하고 위로를 말하니,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은 많은데 능력은 없습니다. 경외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경외가 사라진 교회를 세상도 가볍게 취급합니다. 말하는 대로나 지키라며 뼈 아픈 돌직구를 날립니다. 아직도 교회 다니냐는 말이 평범해지고 말았습니다. 해결이 가능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 해결은 위로부터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밑에서부터, 즉 나로부터만 해결됩니다.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건을 이루며 십자가 복음을 살아낼 때에만 가능합니다. 해서 필요한 것은 나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회복되는 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날이 도적 같이 이르러 내가 아나니아처럼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는 장식이 아니라, 신앙의 증명이며 동시에 심판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심판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두려워 하십시오. 하늘의 시선이 불꽃처럼 나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십자가 복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너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십자가여야 합니다. 가볍지 않은 복음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