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놀부의 노래

목사wannabe 2025. 10. 16. 07:41

 

사도행전 4장 32절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장 32절

놀부의 노래

20251016

 
 

성령 충만한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의 마지막은 공동체의 일상이 얼마나 영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 성령 충만의 결과 중 첫 번째는 소유의 변화였습니다. 씀씀이가 달라지는 것을 가정 먼저 언급하는 성경의 의도가 보이십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인 변화는 소유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흥부가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마음씨 착한 흥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것도 네 것, 네 것도 네 것~" 내가 가진 것도 기꺼이 너에게 줄 수 있고, 그렇다고 너의 것을 내가 요구하지도 않는 흥부의 노래는 이상적입니다. 놀부의 노래는 완전히 다릅니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놀부는 모두 내 손아귀로 움켜잡으려 합니다. 놀부의 노래는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흥부와 놀부는 이렇다 치고 문제는 우리입니다. 믿음으로 살며 예수를 닮겠다는 성도의 노래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가 꼭 흥부여야 한다고 고집부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우리 삶으로, 우리 시대에 성취해야 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사도행전은 말씀을 붙잡고 뜨겁게 기도한 후의 모습, 그러니까 일상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도한 후에 땅이 진동했습니다. 세상의 근간이 성령의 임재로 흔들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진리로 세상을 흔드는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천사처럼 날개가 생기고 천상의 모습으로 날아다녔을까요?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오병이어 같은 일들로 부자가 되었을까요?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은 소유와 집착의 포기로 나타났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 정말 놀랍습니다. 문자대로였다면, 초대 교회는 마치 공산당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자발성입니다. 성도들은 기꺼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그 증거가 소유였는데, 그들은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이렇게 성취된 것입니다. 놀부의 노래처럼 내 손을 움켜쥐고 내 것을 챙기느라 분주한 게 아니라, 흥부의 노래와 같이 내 것도 너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사도행전은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결과라고, 세상을 흔드는 믿음의 방식이 이렇다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것을 지금의 교회에, 지금의 세상에서 문자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문자주의는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까요? 내 것을 다 내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각자의 공동체 안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 섬길 수는 있겠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의 삶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너를 도울 것이 없나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라도 흥부처럼, 사도행전의 성령 충만한 성도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하나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섬겨야 할 그 '무엇' 또는 '대상'을 찾아내십시오. 먼저는 하나 만으로도 족합니다. 작은 섬김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예 안 하고 지나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티 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보시고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 안에 이미 거하신 주님이 사랑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