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라는 상징, 그 표적
사도행전 4장 22절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행전 4장 22절
40이라는 상징, 그 표적
20250924
부당한 종교재판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이 고작 했던 거라고는 위협하고 경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행전의 저자는 여기에 짧은 꼬리표 하나를 달아 놓았습니다.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22). 저자는 복음의 치유를 표적이라고 했고, 병의 기간이 40여 년이라고 굳이 언급합니다. 없어도 될 이 설명을 달아 놓은 의도가 무엇일까요?
신학적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 저자라고 추정합니다. 본래 한 권의 책이었는지, 의도적으로 1부/2부로 나눈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 저자의 두 저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신학적 입장은 매우 유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휘 역시 서로 연관된 의미와 의도로 사용한 경향이 짙습니다. 그런 표현 중 하나가 표적입니다. 표적(세메이온)은 기적과는 의도적으로 다르게 사용하는 단어인데, 이는 일종의 표지판(sign)입니다. 기적이 초월적이고 신비한 사건 자체를 말한다면 표적은 그 사건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에서의 표적이 뜻하는 바와 사도행전에서 표적이 뜻하는 바는 다르지 않습니다. 표적으로 등장한 사건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될 구원을 의미합니다. 누가-행전의 저자는 표적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도를 배경으로 본다면 이 한 구절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22). 누가-행전의 저자는 성전 미문의 걸인이 병고침을 받은 일은 표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아가 그 사람의 이름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저자는 굳이 그가 병으로 앓던 기간이 40여 년이나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꼬리표는 없어도 되는 것인데도 굳이 달아 놓았다면 반드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며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의미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을 설명할 때 40을 빼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출애굽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40년은 불순종을 씻어내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성취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증의 40년이었습니다. 일주일이면 갈 거리를 이스라엘이 40년이나 돌았다는 것은 그러한 방황과 더딤과 인내와 성취가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 신앙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성전 미문과 40년의 질병은 묘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저자가 의도하듯, 이것이 표적이기에, 40년의 질병이 예수의 이름으로 낳았고, 그가 평생 성전 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만 예수를 통해 치유를 받아 일어서서 걷고 뛰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치유를 뜻합니다. 성전 바깥의 인생이 성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날 성전의 갱신과 회복을 뜻합니다. 차별의 공간은 무너지고 참된 구원이 나타날 것을 뜻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40년의 질긴 짓눌림과 고난, 질병과 죄에서의 해방은 오직 예수 이름 밖에 없습니다. 해서 내가 붙잡을 이름도 예수 뿐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나를 해결하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40년을 헤매지 마십시오. 방황을 오래 하지 마십시오. 바라고 원하는 그것이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예수만이 답입니다. 내게서 예수가 먼저 해결되어야 나머지, 즉 가난과 관계, 성취나 질병 등등등 기타 다른 것들이 바뀔 것입니다. 따라서 내게서 오직 예수만 남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