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적
사도행전 4장 21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사도행전 4장 21절
두 번째 기적
20250923
기적의 증거를 목격한 이들로 인해서 성전의 권력자들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사도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거기 있었던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21), 이 사건의 마지막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미와 경배입니다. 이것은 같은 사건을 통해 나타난 두 번째 찬미이자 두 번째 기적이며 결론입니다.
박대영 목사는 <부흥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풀려나게 된 21절을 설명하면서 "두 가지 기적, 두 가지 구원, 두 가지 해방"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만 돌린다고 했던 성전의 사람들이 오히려 인위적인 권력을 사용해 예수의 부활을 막고자 했습니다. 부활을 전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자 거듭 위협했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이 두려워 마지못해 사도들을 놓아주었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으나 정작 하나님의 일에 무지한 이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속적인 방법을 쓰고 세속보다 더 못한 힘을 쓰면서 고작 그런 것들로 율법을 지킨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힘들을, 그런 모자란 땅의 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령 하나님은 힘을 뛰어 넘는 일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앞으로 사도행전은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보여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복음의 성취로 모든 입술이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기적, 두 번째 구원, 두 번째 해방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은 종종 두 번째를 언급합니다. 창조기사에서 인간의 창조는 두 번이나 기록되었고, 모세는 첫 번째 율법판을 깨뜨리고 두 번째 것을 얻습니다. 신약은 구약의 언약이 성취된 두 번째 책이고, 바울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설명합니다. 초림이 있었다면 재림이 약속되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은 두 번째에 강조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잡히고 풀려난 일도 그렇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걸인이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성전 안에 들어가 찬미한 것이 첫 번째 기적이라면, 두 번째 기적은 붙잡힌 사도들이 종교 재판에서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치유받은 걸인이 홀로 하나님을 찬미했다면 놓임 받은 사도들로 인해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두 번째가 무조건 성경적인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의미와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두 번째를 하나 더 생각해 본다면, 성도의 두 번째 삶을 말하고 싶습니다. 죄인이 십자가 복음으로 두 번째 삶을 허락받았습니다. 이 삶이 진짜 기적입니다. 거듭난 자의 삶이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며 복음의 증명이 될 것입니다. 해서 나에게 주신 두 번째 삶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이 결론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 번째 기적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복음 안에서 알차게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두 번째 삶의 결론으로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절로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두 번째 기적을 주시고 각자에게 책임지게 하셨습니다. 해서 이 하루는 오롯이 두 번째 삶을 사는 내 몫입니다. 그러니 오늘을 책임지십시오. 두 번째 기적으로 살아내십시오. 세상에 쫄지 말고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고 담대하십시오. 나의 모든 것으로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십시오. 부디 기적을 살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