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때

목사wannabe 2025. 9. 22. 05:13

 

 

사도행전 4장 20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도행전 4장 20절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때

20250922

 
 

종교 재판에서 피고로 선 베드로와 요한은 오히려 당당하게 권력자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꾸짖습니다. 그들의 경고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20) 단호한 거절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단호한 거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의 방식에는 다양한 적용이 필요할 수 있어도 복음의 본질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용기>는 미국에서 20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저자인 마누엘 스미스 박사는 UCLA의 임상심리학자로서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책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죄책감 없이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적인 여러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직장 상사의 회식 참여 요구에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이성 간 관계나 주변 사람들의 금전적 요구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등등 일상적 관계의 애매한 요청과 그런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풀어냅니다. 10년이나 지난 책이지만 책의 제목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사회적 관계와 책임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유독 거절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것은 정말 간절한 희망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빙빙 돌려서 말하다 보면 질질 끌려가게 마련인데, 상대방이 느낄 거절감이나 그로 인한 관계적 갈등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할 때는 단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심판했던 그 재판정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섰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불과 두어 달 전이었습니다. 여러 번 이런 식으로 재판을 했던 이들은 능숙했을 것입니다. 상대를 이리저리 몰고 갑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도대체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성경을 풀어 설명하면서 당당하게 복음을 증언합니다. 위협도, 경고도 먹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20). 무엇이 겁쟁이였던 이들을 이토록 단호하고 담대하게 한 것일까요? 성령충만한 그들에게는 복음의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고 들은 것, 그들이 행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단호해질 때입니다. 평소에는 사랑도 없고 헌신도, 섬김도 없다가 교회를 핑계한다거나 예배를 우선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납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원만한 관계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방법을 찾지만, 믿음의 성도는 복음을 위해서 단호한 거절을 익혀야 합니다. 그럴 때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복음의 증명, 또는 복음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극우 기독교의 행보에 이해보다 날 선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복음의 증명은 없이 요구만 앞세우기 때문은 아닐까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타협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를 위해서 성도는 지금 복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지금 사랑이어야 합니다. 지금 헌신과 섬김이어야 하고 평소에 십자가의 삶이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면 평소에 복음으로 사는 삶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말도 삶도 십자가 복음이어야 합니다. 기꺼운 섬김과 자발적인 희생 없이 복음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말로 살지 말고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복음의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해서 단호하려면 지금 복음과 사랑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적당한 처세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의 근거로 당당하고 단호하다면 세상은 감히 그런 믿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의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