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산다면서 복잡하다면
사도행전 4장 19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도행전 4장 19절
믿음으로 산다면서 복잡하다면
20250919
유대교 최고의 조직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열린 종교재판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재판했을 때처럼 사도들을 제압할 수 없었습니다. 힘을 가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로 위협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고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 베드로의 이 말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진짜 믿음에게는 당연하고 단순하지만, 계산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복잡한 셈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WWJD라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What Would JESUS Do? 의 약자인 WWJD는 '만약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신앙 운동입니다. 눈에 잘 띠는 곳에 이 네 글자를 새겨 넣고는 항상 이렇게 행동하자는 취지입니다. WWJD 팔찌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티셔츠, 반지에도 네 글자를 새기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유행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정말 유의미한 신앙 운동의 결과가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WWJD 정신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희미해졌습니다. 팔찌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과는 달리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은 개인적인 변화와 고백이 있겠고, 신앙 운동의 특성 상 조직적 유지가 불가능했다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종의 구호로 전락해 버렸다는 지적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을 이런 식의 유행이나 대규모 인원/숫자로 표현하려 하는 시도는 언제라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본래 기독교 신앙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미국 극우 기독교 현상이나 한국 교회의 극우 편향, 대규모 집회 선호 현상에 대한 반성의 증거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신앙은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단순하게, 그래서 강력하게 나타난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위협과 경고에 대답하는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사도들이 잡혔던 날들을 따져본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얼추 50~70일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죽였던 종교재판이 고작 두 달 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처럼 언제든지 죽임 당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렇게 했던 이들이 하는 경고였고 위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앞뒤 계산이 없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 이 말을 단순히 통쾌한 사이다 발언으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말 때문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의 말은 잘 사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계산이 없습니다. 그의 믿음이 이것저것 따지는 계산이 아니라, 예수밖에 없는 단순함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권세가 바로 이렇습니다. 복음이 결론이어서 다른 계산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이미 결론이 된 십자가 복음만이 유일한 답이고 유일한 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면서 이것저것 복잡하고 계산이 앞선다면 베드로의 이 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무식한 종교편향이 되자는 게 아닙니다. 교회중심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 뭔가를 따지고 있는 얄팍한 속내를 포기하지 않고는 성령 충만도, 거룩한 삶으로의 변화도 그저 교회 안의 구호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오늘 나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꽤 괜찮은 말로 포장된 구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행동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한 선택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로 인해 선택한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