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입을 막는 부당함에 대하여

목사wannabe 2025. 9. 18. 06:07

 

 

 

사도행전 4장 17절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사도행전 4장 17절

​입을 막는 부당함에 대하여

20250918

 
 

합당한 증인이 없었던 예수의 재판과 달리 사도들에게는 명백한 증거와 증인이 있어서 종교 권력자들은 뜻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힘으로 입을 막아버리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17) 그들은 부당한 힘으로 누르고자 했습니다. 이런 논의와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만큼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와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진실이라고 부릅니다. 

신언패라는 게 있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 연산군은 조정에서 서로 싸우는 신하들의 말소리가 지겨워 신언패를 만들고 목에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함부로 입을 놀리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권력의 과시였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의 흐름에서 권력의 입막음은 흔하게 등장합니다. 하여 이런 일들은 지금도 기득권이나 권력자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입을 막는 부당한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말은 힘으로 막히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속담에 '백성의 입 막기는 내를 막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진실과 진리는 어떻게든 흐르고 스며들어 끝끝내 자신을 드러내는 때를 찾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력은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만 고여있기에 힘으로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진실을 폭로하며 발전해온 역사는 권력자들의 이런 착각을 통해 동력을 얻습니다. 문제는 고여있는,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있을 때입니다. 사도들을 막고자 했던 성전의 기득권자들처럼 말입니다. 유대교의 종교적 폐쇄성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어느 정도는 익히 들어 압니다. 종교 권력자들은 여러 번 성공했을 것입니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종교 역사와 성전의 권위를 기반으로 그들은 힘을 유지했고 누구도 함부로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성전과 율법은 매우 견고한 힘의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제거했던 이들이었는데, 이번에는 뭐가 틀어졌습니다. 공개적인 종교재판의 현장에서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증인이 거기에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그들은 늘 그래왔듯이 힘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17).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의 구조로 사도들의 입을 막아버리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현실은 다를까요? 오늘날의 교회는 다른가요? 은혜롭게 하자며 쉬쉬하고 덮어버리는 내부적인 일들은 얼마나 쉽습니까. 상처를 보듬고 문제를 고치려 하기 보다, 적당히 덮어 버리면서 은혜를 운운할 때,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사실은 쉽게 무시합니다. 권력의 구조 안에서 스스로 입을 막아버리고 거룩하게(?) 신언패를 스스로의 목에 거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진실과 진리는 때를 찾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결코 진실을 덮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것을 삶에 새겨야 합니다. 스스로 드러내면 고백이지만 남이 들추고 떠들면 고발입니다. 고발 당하는 수치를 겪지 않으려면 엎드려 고백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고발은 폭탄이지만 고백은 아름답습니다. 터지는 것은 더럽고 추합니다. 스스로 내어 놓는 것이 깨끗하며 아름답습니다. 

날마다 고백하는 단정한 삶이라면 좋겠습니다. 부당했던 권력의 민낯을 매일 수십 번 씩 보고 듣는 요즘이어서 더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을 막고 눈을 가리는 부당한 일들, 그런 힘들은 결국 무너지고 까발려지게 마련입니다. 하여 지혜는 날마다 나 스스로를 깨끗이 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귀를 씻고 마음을 씻고 삶을 씻어내며 단정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믿음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드러내실 때, 결국 그렇게 드러나게 될 때 온전한 우리이기를,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 할 것입니다.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