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범죄는 불가능하다
사도행전 4장 14절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사도행전 4장 14절
완전 범죄는 불가능하다
20250916
종교재판을 받던 베드로와 요한의 상황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력자들 앞에서 베드로는 오히려 그들을 꾸짖고 훈계하듯 말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의 말이 다 맞다 해도 괘씸죄에 걸릴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성전 미문에서 병고침을 받은 걸인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증인이자 증거입니다. 그의 존재가 사도들의 모든 말을 뒷받침 합니다.
주호민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는 엄청난 흥행으로 3편에 대한 요구가 많은 대작입니다. 한국 민속과 무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기독교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저승의 7대 신에게 재판을 받을 때마다 등장하는 죄의 증거들이었습니다. 죄인은 아무도 모른다고 여기며 행동했지만 저승에서는 그 상황과 인물들이 모두 증명되곤 했는데, 명백한 증거가 나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당사자들의 표정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증거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법체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증거재판주의(증거제일주의)"입니다. 법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현대 형법이 갖추고 있는 최상의 미덕은 증거제일주의라고 말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누구라도 결백을 주장할 수 있고, 증거가 있는 한 어는 누구도 완전 범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명과 암이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증거와 증인의 효력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부당하게 종교재판을 받습니다. 마치 이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받던 그 새벽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때 당당히 증인으로 나설 수 있었던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그가 피고인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함께 한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걸인, 예수 이름으로 치유 받고 주를 찬양하던 그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14) 아마도 율법에 따라서 그는 이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했을 것입니다. 율법은 반드시 어떤 사건의 고발에 대하여 증인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참고인이 아니라 증인이자 사건의 증거로 그 자리에 있는 걸인은 아무런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 존재감이 확실합니다. 그가 있었기에 이 재판은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판에 아무런 증인이 없었던 것과 다르게, 사도들의 재판은 증인이 있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릅니다. 이 사람의 존재감이 확실히 보이십니까? 권력자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믿음의 성도는 증인이자 증거로 드러나야 합니다. 일부러 활개치고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증인의 존재감, 신앙인의 영향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죄의 완전함이라는 것은 증인이 있는 한 불가능합니다. 해서 완전 범죄를 기대하지도 말고, 그런 의도에 절망하지도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리는 감춰지지 않습니다. 부활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내가 증인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를 증거로 보내시는 하늘 뜻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내 몸이 가 있는 그곳에서 주님은 나를 부활의 증인, 살아있는 증거로 보내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적당히 숨지 못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밝히 드러나고 맙니다. 그러니 오늘을 더 신실하게, 더 진실하게 살아낸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가 곳곳에서 환히 빛나는 십자가의 불빛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