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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름을 찾을 때까지

목사wannabe 2025. 9. 12. 05:11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12절

우리가 이름을 찾을 때까지

20250912

 
 

종교 권력자들에 둘러싸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요, 그 이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더라 하였더라"(12).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주신 이름이 예수입니다. 해서 믿음의 성도는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도 예수의 이름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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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고 했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모티브입니다. 미의 여신 비너스와 그의 아들이자 사랑의 신이라 불린 큐피트, 그리고 큐피트가 사랑했으나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던 인간계의 공주 프시케의 이야기입니다. 큐피트의 얼굴을 보고자 했던 프시케의 호기심을 모티브로 루이스는 신화와는 다르게 평생 추녀로 베일을 덮고 살았던 또 다른 공주 오루알 공주의 일인칭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행위자로서 큐피트와 오루알 공주는 같은 행동을 취했으나 서로 다른 동기였다는 것이 루이스의 소설에 나타난 차이입니다. 루이스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얼굴, 즉 올바른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인생의 유한함을 말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난해한 소설이지만 오루알 공주가 얼굴의 의미를 깨닫는 부분에서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산앙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을 되찾는 여정을 신앙의 여정이라고 할 때, 오루알이 자신의 추함을 깨닫고 베일로 가리고 다녔던 것에서부터 그 추함을 인정하고 난 후에야 되찾은 자신의 얼굴, 그 후에 나타난 아름다운 변화는 죄인과 회심, 그리고 구원자의 도움으로 거듭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얼굴을 되찾은 오루알은 또 다른 프시케로서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얼굴을 찾는 이야기는 이름을 찾는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는 것처럼, 죄인이 버린 이름이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라고 베드로는 힘주어 증언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더라 하였더라"(12). 성전 권력자들이 죽이고 버렸던 이름인 예수가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세상을구원하시는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이 이름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미문에서 구걸하던 이가 고침을 얻은 것도, 자신의 삶이 변화된 것도, 이스라엘의 구원과 열방의 구원도 오직 예수의 이름밖에 없다고 증언합니다. 베드로가 버리고 도망간 이름이 예수였으나 그가 되찾은 이름이 예수입니다. 성도가 불려야 할 이름도 오직 예수 뿐입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다른 구원도 없습니다. 성공이라는 이름, 소유라는 이름, 비교와 우월, 즐거움, 건강 그 어떤 것도 나의 이름일 수 없습니다. 성도의 이름은 오직 예수, 이 하나 뿐입니다. 되찾아야 할 신앙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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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불린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이상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주변의 세상은 나에게서 예수를 기대합니다. 적당히 교회 다니는 교인 말고, 예수처럼 살아내려는 참된 마음을 기대합니다. 그러니 예수를 말하는 것도 좋지만, 부디 예수처럼 살아내 주십시오. 주님이 삭개오를 대하듯 환대하고 웃어주십시오. 주님이 과부를 대하듯 위로하고 먹여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이름을 되찾으십시오. 우리 서로가 마주했을 때 예수를 확인하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