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누가 앉은뱅이인가

목사wannabe 2025. 9. 3. 05:26
 

사도행전 4장 2절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사도행전 4장 2절

누가 앉은뱅이인가

20250903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성전 관계자들이 와서 붙잡았습니다. 사도들이 붙잡힌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2). 싫어했다는 말은 분노하고 격앙했다는 뜻입니다. 이토록 복음에 분노한 이들이 누구입니까? 제사장들,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1). 성전에 있는 권력자와 성전 바깥,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 복음을 받아들여 인생이 변한 자. 이 둘 중 누가 앉은뱅이입니까? 

<관계>의 저자 김일환 목사는 책에서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조국 교회에서 경건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훈련시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은 다양해도, 방법은 화려해도, 대부분 마음의 훈련들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성경, 기도, 독서, 예배, 봉사와 전도의 차원에 다양한 방법의 훈련을 제시합니다. 이름은 달라도, 방법은 차이가 있어도, 결국 이 다섯 가지 훈련에 대한 내용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자주 강조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분명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책상과 의에 앉아서 하는 행위들입니다." 정말 따끔한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익숙한 말들, 그런 일들로 신앙을 말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마치 성전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권위와 권력으로 높은 자리에 앉아 명령을 내리고 판단하는 성전의 권력자들과 유사합니다. 그들은 성전 미문의 걸인이 고침 받았다는 소식과 그로 인해 솔로몬의 행각에 많은 이들이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 증거가 무엇인지 들은 권력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2). 싫어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를 자신들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에 참석했던 이들, 백성의 장로들 모두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 곧 예수를 죽인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를 죽인 실수와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던 이들은 권력으로 사도들을 붙잡아 가두어 버립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말로 이것저것을 조종할 뿐, 이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복음을 거부합니다. 성전 안,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았으나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과 성전 밖 미문에서 평생 앉아 구걸했으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치유 받은 기적의 사람. 과연 누가 앉은뱅이입니까?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앉은뱅이 신앙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보겠지만, 성령은 사도들을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바깥으로 이끌어 갑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나의 신앙도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바깥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바깥에서 믿음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경건하게 앉아버린 것이 아닌, 교회 바깥에서 활기차게 증명하는 사랑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