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알수록 모르는 겸손

목사wannabe 2025. 8. 22. 07:10

 

 

사도행전 3장 17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사도행전 3장 17절

알수록 모르는 겸손

20250822

 
 

예수의 이름을 증언한 베드로는 십자가의 형벌이 유대인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17). 성경에 통달했다고 여긴 이들, 날마다 모세의 율법을 외우고 토론하던 이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배우고 알고 있어도 예수를 모르면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머리로 많이 알아도 몸이 모르면 그것은 아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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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향한 비판 중에는 "머리만 큰 교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는 많이 했으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가히 한국 교회의 성경 공부는 대단합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던 것을 극복하고자 학구열을 불태우며 배워서 성공하자 했던 것처럼, 교회도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엄청난 열성을 보였습니다. 이름도 다양한 각종 성경 세미나는 웬만한 교회에서는 경쟁하듯 내세웠고, 소위 양육과 훈련이라는 교회 활동의 대부분은 성경 공부였다는 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모여서 책상에서 배운 지식으로 끝나는 일이 다수였다는 점입니다. 세미나식 성경 공부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와서 앉은 자세로 보고 들은 성경은 몸을 일으켜 교회 뱌깥으로 나갔을 때 몸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삶과 몸으로 이어지지 않은 배움은 교회 안과 밖이 다른 외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는 것과 삶이 다른 현대판 바리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을 통달했다고 자부했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하늘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눈앞의 성자 예수님도 모르는 그들은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지 못함, 즉 무지라고 지적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17) 사실 베드로의 이 말은 안 어울립니다. 베드로도 유대인이었으니 율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부였습니다. 성전에서 율법을 강론하고 깊이 있게 성경을 고민하던 사람들보다 베드로는 율법을 더 잘 아는 것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너희는 알지 못한다고, 관리들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을 때, 이것을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요? 병의 치유와 기적이 없었다면 베드로의 이 말은 우습게 여겨졌거나 굉장히 무시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실체였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세계는 더 넓고 더 깊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아야 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쉽게 단정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더 몸으로 알아가고 삶으로 배워가는 겸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더 사랑하고 더 내어주는 섬김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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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다고,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알면 알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겸손이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진리의 깊이는 다 알 수도 없고 다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하여 성도의 몫은 겸손히 오늘을 사랑으로 채워가는 것 뿐입니다. 순종으로 받아내는 것 뿐입니다. 머리로 배운 것을 겸손하게 몸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