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누구의 믿음인가

목사wannabe 2025. 8. 21. 07:02

 

 

사도행전 3장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3장 16절

누구의 믿음인가

20250821

 
 

몰려든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와 그 이름, 예수에게서 난 믿음을 설명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 병을 치유하고 인생을 변화시킨 것은 예수의 이름과 그 이름에서 난 믿음입니다. 이때 믿음은 누구의 것을 말할까요? 여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단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실함과 충성을 뜻하는 피스티스가 있고, 페포이데시스라는 확신, 신념을 뜻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리고 맡긴다는 표현으로 피스튜오라는 동사형도 있습니다. 같은 단어여도 번역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충성, 다른 곳에서는 믿음이라고 표기된 것까지 합치면, 성경에는 믿음에 대한 정말 다양한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건은 이 믿음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적으로나 기독교 전통에서 볼 때 성도의 믿음은 자신에게서 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믿는다고 표현하더라도 이 믿음의 발현은 믿음의 대상에게서부터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설명이 다양할 수 있어도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에게서부터 우리에게로 믿음이 주어졌다는 것에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믿는다'고 할 때의 믿음도 나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믿나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구분이 성전 미문의 걸인을 치유한 사건에서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걸인이 치유된 사건으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든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을 전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그 이름에서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이 걸인의 믿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걸인을 치유한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이었고, 걸인은 치유를 경험한 후에 믿고 찬미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이 표현하는 대로라면, 믿음은 본래 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이 믿음의 통로를 통해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해서 믿음도 은혜로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믿음의 신비입니다. 나는 믿지 못했는데 믿는 자를 통해 나도 믿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나의 믿음도 누군가의 믿음으로 연결되고 전해질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나의 믿음으로 내 주변의 "너"가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의 믿음 없음을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관건은 그 이름을 믿는 나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너의 믿음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적당히 믿을 수 있을까요? 자녀의 믿음이 부모에게 달려 있다면 가정에서의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불신과 비난이 나의 믿음에 달려 있다면 함부로 차별하고 정죄할 수 있을까요? 

걸인을 치유한 믿음은 분명 걸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을 통해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어졌다면 오늘 나는 더욱 순전한 믿음이어야 하겠습니다. 부디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품고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너를 붙잡는 오늘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