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좋은 일에 참여하기

목사wannabe 2025. 8. 20. 05:41
 

사도행전 3장 15절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3장 15절

​좋은 일에 참여하기

20250820

 
 

성령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 담대한 복음 증거로 나타납니다. 임재-충만-증거의 순서로 베드로는 두 번째 복음 증거를 솔로몬 행각에서 해나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15). 유대인들이 고의적으로 예수를 죽인 일과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일을 언급하면서 베드로는 죽음과 부활의 증인임을 선언합니다. 이 선언의 방점은 부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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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코리아에서 올해 초 <과학으로 확인된 올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8가지 방법>이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그 방법은 '나이가 들 수록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기, 타인의 행복을 기뻐하는 것, 자원봉사 참여, 자신의 뿌리와 연결, 좋은 일 목록을 적고 나누기, 재미있는 활동에 참여, 힘겨울 땐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카페인 줄이기"입니다. 각 항목마다 통계와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는데, 단순하게 분류하면 나쁜 것은 줄이고 좋은 것은 늘리는 것입니다. 이때 좋은 것이란 관계와 나눔입니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대화,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네 삶은 (굳이 과학적인 근거를 들지 않아도) 더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해 보여도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바쁘고 분주한 것을 추구하면서 고립을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바쁜 이들은 능력이 있어 바쁜 것이겠지만 그 결과 의미 있는 관계에 헌신할 시간이 없습니다. 반면 바쁘지 않은 이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의기소침해져서 사회적 참여를 스스로가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 다 고립과 소외를 만들 뿐입니다. 건강하고 올바른 사회와 문화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국가도 사회 단체나 교회도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성도는 좋은 일에 참여하는 건강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때 좋은 일이란 교회 활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의 활동 무대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옳지 않은 일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손해보지 않으려고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담대하고 당당하게 좋은 일, 선한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직설적으로 유대인인 너희가 구원자 예수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마치 정죄와 책망을 하는 것 같지만, 베드로가 강조하는 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부활을 강조합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15).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회개로 이끄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지적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최종적으로 담아내야 할 것은 지적과 정죄를 지나 회개와 영접,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증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는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부활의 증인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사랑을 회복한 당사자였습니다. 죽음에도 증인이요 부활에도 증인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더 강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활의 증인입니다. 범죄와 잘못을 짚어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내가 심판자가 되어버리면 안 됩니다. 믿음의 성도는 정죄로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부활까지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여 더 좋은 일에 참여하십시오. 더 좋은 일의 증인이 되십시오. 나를 통해 부활의 생명이 흘러가도록 좋은 일, 좋은 사람, 좋은 성도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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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인들은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요? 교회를 향한 날 선 비난이 멈추지 않는 것은 어느 누구 때문 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부활의 사람이어야 할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 더 좋은 삶, 더 다정한 삶, 더 건강한 관계를 이뤄가면 좋겠습니다. 나쁘고 어두운 일에 연결되지 말고, 좋은 일, 좋은 곳에서 발견되는 우리여야 하겠습니다. 아픔이 있어도 환하게 품어낼 수 있는 나라면, 아파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존재하기 위해 부활을 얻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