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믿는 도끼를 벗어나기

목사wannabe 2025. 8. 19. 06:32

 

 

사도행전 3장 13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사도행전 3장 13절

믿는 도끼를 벗어나기

 
 

성령의 권능은 신비한 기적도 있지만, 담대한 복음의 증거라는 것을 성경은 구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3~26절은 성령의 사람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 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13). 베드로는 예수를 죽게 한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너희라고 정곡을 찌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그 믿음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죽게 한 십자가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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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사람이나 대상에게 배반을 당하거나 기대했던 어떤 일이 어긋나 오히려 해가 되었을 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아픈 일을 겪는 것 같습니다. 신뢰가 사회적 자본이 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사는 세상은 관계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표현했는데,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견디려고 서로 몸을 바싹 붙일수록 서로를 찔러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테를 뜻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믿을 수 없으면서도 같이 살아야 하는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믿는 도끼가 발등 찍는다는 속담처럼 언제라도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의 발등을 찍을 수도 있는 얄팍한 관계가 당연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합니다. 문제는 우리 신앙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수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수평으로는 너와 나의 관계를 지향하는데, 이 관계를 우리는 교회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믿는 도끼가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면서 죄에 무감각하고, 사랑의 종교라고 하면서 교회 바깥에서는 혐오를 서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평생 일어서지 못했던 걸인이 일어났습니다. 성전의 많은 이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었고, 그들은 솔로몬의 행각으로 가 사도들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고 여긴 것입니다. 히지만 베드로는 열광하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11).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가 하나님의 종을 죽였다고 베드로는 직설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예수는 빌라도나 로마가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를 죽인 것이 바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너희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도끼가 발등 찍듯, 하나님이 선택하여 열방의 제사장으로 부르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도 믿는 도끼일 수 있습니다. 내가 믿는 도끼처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교회와 일상을 갈라 놓고 두 가지 마음, 두 가지 모습으로 열심히 삽니다. 해서 적당히 죄를 지어도 무감각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내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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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믿는 도끼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까? 적당히 타협하고 남들 하는 데로 적당히 사는 것은 순전하지도 거룩하게 구별되지도 않습니다. 일상의 모습이 진짜 믿음의 현장일 것인데, 나는 적당히 지내고 있으니 하나님은 도대체 언제 나를 통해 일하시고 언제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실 수 있을까요? 발등 찍는 도끼가 아니라 순전하게 순종하는 믿음의 삶이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일상에서, 그 관계에서 믿음과 사랑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찾으실 때 발견되는 믿음이 되십시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의 사랑을 이루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