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중독 감옥을 벗어나기
사도행전 3장 12절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도행전 3장 12절
인정 중독 감옥을 벗어나기
앉은뱅이 걸인을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집중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드로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 주목 받고 인정받는 것, 좋은 평판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럴 때 좋은 신앙은 더 주목 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넘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연세대 언론홍보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람의 감정과 내면을 연구하는 김주환 교수는 현대인의 삶이 인정 중독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마음의 근력을 키우고 자기 자신과의 고요한 소통을 시도할 것을 주장합니다.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유퀴즈온더블럭"에서 김주환 교수는 우리 시대가 인정 중독에 빠진 위험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면서 사소한 SNS에 집착하거나 타인의 인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는 정상이지만 그 인정에 의존적으로 변할 때 삶은 자율성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좋은 평판을 얻고자 타인의 요구에 끌려 다니거나,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목회자가 비교와 열등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인정 중독 현상입니다. 성도들이 서로의 은사를 비교하거나 갈등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공통분모를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존중하고 이해해야 할 신앙 관계의 공통분모는 십자가 사랑입니다. 자기를 내어주시는 이 사랑에 집중할 때 우리는 인정 중독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전 미문에 있던 걸인을 고쳐준 사건으로 성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몰려왔습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집중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자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처럼 그들도 사도들에게 몰려든 것입니다. 하지만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그들에게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전합니다.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들의 칭송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평판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히려 이 놀라운 신앙의 근거, 모든 이에게 부어주실 은혜의 공통분모인 예수님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인정과 평판은 주님 뿐입니다. 죄인을 부르신 주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복음만이 나에게 필요한 유일한 인정입니다. 이것을 단단히 붙잡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 평판, 그들이 하는 옳지 않은 가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독특한 신앙의 가치로 전혀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좀 더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 열심히 나오고 기도회에 빠지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일상에서 예수님을 자주 떠올려야 합니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비교하려 할 때마다 그런 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재차 일깨워야 합니다. 은근한 자랑, 은근한 비교에 물들지 말고 고유한 십자가 사랑에만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자주 스스로에게 말해주십시오. 십자가 사랑을 말해주십시오. 소리 내어 복음을 말하고 스스로 들으십시오. 나를 살리는 건 평판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