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움직임의 힘

목사wannabe 2025. 8. 11. 06:25
 

사도행전 3장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사도행전 3장 7절

움직임의 힘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교회 밖 세상에서의 모습을 사도행전은 성전 미문에 앉은 걸인과의 만남으로 열어갑니다. 성전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말을 걸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말만 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7). 말과 행동의 연결이 너무 당연하게 이어졌습니다. 이 움직임이 걸인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평생 앉아 있던 그가 일어섭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스트레스와 운동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켈리 맥고니걸 박사는 자신의 책 <움직임의 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인간은 움직이도록 만들어졌고, 움직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체가 움직일 때 뇌는 근육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희망분자라 부르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에는 항우울성 효과가 있어, 더 많이 움직일수록 삶이 더 활기차게 된다고 말합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저자의 주장은 믿을만 합니다. 몸의 움직임이 줄어드는 것은 점점 더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기대거나 누워 쉬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면 이는 몸의 작용과 정반대, 그러니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몸만 그럴까요? 우리 신앙도 움직임이 있어야 생기와 활력이 생깁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걸인을 일으킨 이 사건이 움직임의 힘을 잘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걸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말만 하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움직였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전달합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7). 말과 그 다음 행동이 연결되었습니다. 움직임이 생겼고 한 사람의 움직임이 연결되어 다른 사람의 움직임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생 앉아있을 수밖에 없던 걸인의 그 발과 발목을 사도행전의 저자는 일부러 자세히 언급합니다.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발과 발목의 움직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혼자 일어설 수 있을까요? 물론 하나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몸을 사용합니다. 몸을 움직여서 잡아 일으킵니다. 이 동작에 담긴 의미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유대교 관습에서 질병은 죄와 부정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부정한 이의 손을 잡았다는 것은 기존의 관습과 가치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은 막힌 담을 헐고 경계를 넘어 생명을 일으키는 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나아가 복음은 말이 아니라 삶, 더 정확하게는 너를 향한 움직임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의 움직임이 활기를 가져오는 것처럼, 복음도 움직일 때 생생한 활기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 내게 주신 복음은 움직이고 있습니까? 혹 움직임이 없이 말로만 복음이어서 권세도, 변화도, 성장도 없는 나약한 복음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닙니까? 

움직이십시오. 몸을 쓰는 것이 몸의 생리이듯, 몸을 쓰는 것이 복음과 교회의 생리입니다. 몸을 쓰지 않는 것이 죽음이듯, 복음과 교회 역시 내 몸을 쓰지 않으면 화석화되고 맙니다. 그러니 몸을 쓰십시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나의 움직임으로 너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너만 좋은 게 아닙니다. 결국 그 움직임이 나를 살게 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움직여야 합니다. 내 손과 발, 내 얼굴과 표정이 굳어가는 게 아닌, 움직이면서 그래서 더 활기찬 복음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