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전도? 절벽 같은 현실

목사wannabe 2025. 7. 30. 08:36
 

사도행전 2장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장 47절

​전도? 절벽 같은 현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의 공동체는 말씀을 배우고, 몸의 변화로 서로를 채우며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 어디서든 교회로 살아가는 건실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 결과 날마다 성도가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전도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전도 절벽이라 말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자기 PR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개개인이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해서 퍼스널브랜딩을 통해 1인 기업이 되기도 하고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바이럴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 장군과는 달리, 자신을 알리지 않으면 되려 죽고 마는 세상입니다. 온라인 시대의 특징적인 단편이라 하겠습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교회도 브랜딩에 뛰어들었습니다. 작건 크건 나름 살아남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여름 시즌 사역들을 앞두고 재미와 다양성을 앞세워 각종 쇼츠나 릴스로 홍보하는 것을 보면,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유독 전도는 절벽입니다. 물론 계획된 신도시에 세련된 건축으로 학교와 인접한 곳에 자리 잡은 중대형 교회들은 좀 예외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교회는 전도가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교회는 HOW TO를 강조하는 다양한 전도 방법을 배우고 도입하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조차 전도를 기피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명과 은사가 있는 몇몇 사람만 전도할 수 있다는 오해도 많습니다. 물론 지혜로운 접촉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요구되고 특출한 끈기와 인내도 필요합니다만, 보다 고민해야 할 것은 전도의 본질입니다.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전도는 밖으로 나아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삶이 올바르고 덕스러운 모범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해서 불러오기 전에 찾아오는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여기에는 상황과 해석을 유추해서 추론해 볼 수는 있겠으나, 나가서 사람을 불러 모았다는 뉘앙스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처음 신앙 공동체가 칭찬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두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는 투명성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세상이 알고 놀랐습니다. 둘은 개방성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동체였다는 점입니다. 누가-행전의 저자는 이 표현을 통해 주님의 주권적인 일하심을 따라 교회가 삶을 드러내고 팔을 벌려 누구라도 받아주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끊이지 않았던 성경의 증언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비교해 본다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현대 교회는 투명성을 담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려 있지도 쉽게 받아주지도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어쩌면 전도 절벽이라는 건, 교회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때문은 아닌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로 사람을 보내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삶을 드러내고 기꺼이 환대하는 것입니다. 교묘히 감추고 적당히 덮으려는 일만 하지 않아도 교회의 이미지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죄와 판단, 지적하기 보다는 먼저 환영하고 친절하게 섬기려 한다면 정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말하기를 좀 느리게 하고 다정하게 들으려 하기만 해도 우리는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나부터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귀가 크고 품이 넉넉한 우리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