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열심은 독이 된다
사도행전 2장 36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장 36절
잘못된 열심은 독이 된다
베드로의 설교 결론은 죽임과 살림의 대조입니다. 그는 과감히 유대교의 선택과 행동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반전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이 모순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열심과 그것을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의 반전을 베드로는 대담하게 지적합니다.
<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의 저자 리샹룽은 젊은 작가입니다. 그는 제한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시대적 문화를 지적하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식의 노력이 아니라 결과가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만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원하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원치 않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흔한 자기계발서이고 혹자는 제목이 다 했다고 혹평하기도 합니다만, 저자의 주장은 날카롭습니다. 결과 없는 보여주기 식의 열심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방향이 잘못된 열심은 결국 자신에게 독이 되고 맙니다. 이 책은 아마도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들이 한 번 쯤 읽어볼 만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죄인의 잘못된 자기 열심과 그것을 끝내 바꾸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이해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열심을 직설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요엘 선지자의 예언,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부활을 증언한 베드로는 유대교의 잘못된 열심을 꼬집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친다고 했지만 정작 말씀으로 오신 예수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만을 고집하고 만 것입니다. 이 고집스러운 자기 열심이, 자기 만족이 죄의 핵심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작금의 교회에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사랑의 예수를 말하지만 정작 사랑하지 않는 교회와 교인의 모습, 혐오와 배척을 일삼는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을 보면 이천 년 전의 바리새가 재현한 것만 같습니다. 그들이 메시아 사상을 우상처럼 섬겼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의 교회도 평안과 성공, 현세의 복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내어줌, 섬김은 신앙의 보편적 가치가 되지 못하고 되려 많은 교인들이 성공과 출세와 부요함을 추구합니다. 유대교의 잘못된 열심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였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가 벌이는 잘못된 열심, 자기만족의 종교생활은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성전에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 욕망을 숭배하는 곳에 예수의 자리는 없습니다. 십자가도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열심에 응답하실 하나님은 없습니다. 잘못된 열심은 자기를 추구하는 헛됨일 뿐입니다.
죄인의 잘못된 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온전히 부활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이렇습니다.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나를 진정으로 채우는 것은 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뿐입니다. 성도의 참된 만족은 성공이나 부유함이 아니라 죄 사함과 영생입니다. 오직 이것만이 유효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잘못된 열심으로 허망해지지 말고, 하나님이 이미 일하신 부활과 영생으로만 살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로만 살면 좋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진정 십자가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