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믿음이 다를 때
사도행전 2장 35절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사도행전 2장 35절
현실과 믿음이 다를 때
부활을 증언하는 베드로는 또다시 다윗의 시편 110편을 인용합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5). 하나님의 오른쪽이라는 말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이 왕의 주권으로 이 땅을 통치하고 계심을 주장합니다. 로마가 지배하던 당시의 현실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도 베드로는 당당하게 주님의 다스리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헬무트 틸리케의 <불안의 시대, 기도를 배우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나눈 주기도문 설교 모음집입니다. 예배 중에도 폭격으로 인해 몇 번이나 예배를 중단해야 했고, 심지어 예배할 안전한 장소가 없어 폐허 위에서 예배하기도 했지만, 틸리케는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님의 통치를 끊임없이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죽음의 참상이 벌어졌는가? 이 질문은 당시 전쟁의 피흘림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의문이었습니다. 소수 정치인들의 야욕과 그에 준동하는 세력들, 무자비한 군인들로 인해 무고한 가족이 죽고 또 죽어갈 때, 많은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은 성경과 하나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없습니다. 신은 죽은 게 분명합니다. 이런 절망과 좌절이 지배하던 죽음의 현장에서 설교자로서 틸리케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 사랑, 하나님 나라, 은혜의 풍성함 같은 것들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비슷한 어떤 말도 죽음에 물든 잿빛 영혼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틸리케는 역설적으로 현실이 죽음 투성이였기 때문에 더욱 예수를 보자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줄곧 저 처참한 광경과 이름 없는 고통 하나하나를 우리 눈앞에 그려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 계속하여 그것을 주목하라고 강요합니다. 이를 통해 점점 더 돌처럼 굳어지면서 냉담하게 바뀌어 가는 우리 마음을 부드럽고 민감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애를 써도 우리에게는 진보가 없습니다. .(중략).. 정말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마치 가장 높은 집합 장소에 모이는 것처럼, 예수 안에 모입니다. 예수의 눈빛은 땅끝까지 이르러 고통을 짊어집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해야 할 현실에서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주목하고 그것을 완성하시는 예수를 봐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현실과 믿음이 다를 때는 더욱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현실을 재해석하고 덮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히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며 현실을 재해석합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진정 달라졌습니다. 다윗의 노래처럼 주님이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니 현실에 무너지지 말고 더욱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사이며 순교의 역사이고 구원의 경륜입니다. 당장 달라지는 게 없어 보이지만 주님이 이 현실을 붙잡고 다스리고 게십니다. 끝끝내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현실과 믿음이 다를 때, 대부분은 믿음을 부정합니다. 그만큼 마음이 어렵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해야 할 우리의 몫은, 역설적으로 더욱 믿음이 되는 것 뿐입니다. 어려운 현실일수록 더욱 왕 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이것 외에 우리에게 소망이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음이 된 성도는 결국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대로만 된다는 것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