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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면 살아나리라

목사wannabe 2025. 5. 2. 07:46

 

 

5월 2일(금) 한 구절 묵상

시편 119편 28절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편 119편 28절

​들리면 살아나리라

 
 

시편 119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긴 노래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따라 각 연을 8행으로 구성한 노래인데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과 순종을 다양하게 표현한 시입니다. 25~32절은 알파벳 달렛(영어로 치면 D)의 연인데, 시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힘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28) 고난을 겪을 때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은 의미를 모를 때입니다. 이때 시인은 이미 주신 말씀, 즉 언약을 붙잡습니다. 이는 고난을 겪는 성도에게 주시는 지혜입니다. 

박완서 작가의 아픔을 담아낸 <한 말씀만 하소서>는 외아들을 잃은 엄마의 문드러지는 속내를 담아낸 일기입니다. 감히 가늠하기도 힘든 이 아픔에 대해서 작가는 하느님께 따져 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왜 내 아들이어야 했는지 처절하게 물고 늘어지지만 하늘은 답이 없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 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슬픔이 명치가 끊어질 듯한 고통으로 체화되어 뛰쳐나온 기도실을 뒤로 하고, 아무도 없는 울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간 작가는 격정의 울음을 토해냅니다. 얼마나 시간을 지났을까요. 실컷 울음을 토해 낸 후 그녀가 떠올린 것은 법구경이었다고 합니다. "어리 석은 이는 한평생을 두고 / 어진 이를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이 구절을 두고 작가는 말합니다. "신을 느끼는 감수성에 있어서 나는 철두철미 숟가락일 뿐이다." 교회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 없는 하나님을 한 번 쯤은 경험하게 마련입니다. 욥처럼, 요셉처럼 말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내 질문에 답이 없으십니다. 응답을 받았다는 수많은 고백들이 무색하리만치 나에게만 답이 없는 하나님을 겪는 것은 정말 처참한 기분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 응답이 없을 때, 대답 없는 하나님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시인은 이미 주신 약속만을 붙잡을 것을 알려줍니다. 사실 상실과 아픔은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품어져서 또 다른 삶의 근거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이 긴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약속입니다. 지금의 상황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그 약속의 말씀이 계속 다가와야 하고 부딪혀야 합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느리게, 어떤 때는 깨어짐으로 말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지은 제목처럼 한 말씀만 들리면 됩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주의 음성이 들리면 살아납니다. 물론 각자의 아픔, 그 깊이를 함부로 규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쨌든 어둠을 파 먹으면서 쓰라림 속에 뒹굴다가도 한 말씀만 들리면 됩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이 사랑의 동행이며 이유 없는 위로이고 끝없는 인내여야 합니다.

시인은 알 수 없는 고난에서 이미 주신 약속을 붙잡겠노라 노래합니다. 그의 노래는 아마도 울음이었을 것입니다. 울면서도 듣겠다고 말씀을 붙잡는 그 간절함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아픔 속에 뒹굴더라도 하나 만은 붙잡으십시오. 사랑의 말씀 그 하나 만은 꼭 붙잡으십시오. 함께 아파하시는 십자가의 주님 만을 붙잡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