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혼자 울지 않도록

목사wannabe 2025. 4. 3. 06:09
 

4월 3일(목) 사순절 묵상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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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1장 29절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린도후서 11장 29절

혼자 울지 않도록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생긴 오해로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고린도교회야말로 바울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갖던 공동체였기에 오해가 용납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표현한 바울의 말이 이렇습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29). 성도의 작은 아픔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바울의 마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맞닿아 있을까요? 예수님을 닮은 바울의 마음이 사무치듯 그리운 요즘입니다.

묵상집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의 오늘 묵상 제목은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 교회"입니다. 내용에는 김환영 시인의 <울 곳>이 인용되어 있는데요, 한 번 쯤은 보았을 시입니다.

할머니, 어디 가요?

예배당 간다

근데 왜 울면서 가요? 

울려고 간다

왜 예배당 가서 울어요?

울 데가 없다

이 세상에서 울 수 있는 공간이 한 군데라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고백하는 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에게 엄마 없는 집은 집이 아닙니다. 엄마가 오면 아이는 평안을 느낍니다. 힘든 일이 있었다면 참았다가 그제야 울음을 터뜨립니다. 집을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이라면, 그 사람들의 첫 번째 임무는 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중.

주님은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나사로의 장례에 가셔서 우셨다는 그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그가 우셨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예수님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아픔에 온전히 동참하신 주님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오늘날의 교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교회는 성공지향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메시지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함께 울고 슬픔에 동참하고 위로하는 일, 서로를 돌보는 일에는 등한시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성도들이 원하는 교회의 모습, 목회자의 덕목에는 돌봄이 1순위로 나타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돌봄과 위로, 함께 울어주는 동행입니다. 

​무엇인가 해결해 주겠다는 (과한)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해결자는 되겠고 시혜자는 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구조적 권력 구도와 교만은 그 자체로 죄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온전히 해결해 주지도 못하면서 그런 구조적인 권력을 은근히 탐하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 조심스러운 안부, 마음 써주는 세심함입니다. 너를 걱정하며 기도해 본 적이 언제입니까? 드러나지 않아도 그렇게 품고 기도하는 일이 정말 절실한 요즘입니다. 혼자 울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고개 돌린 울음을 기꺼이 덮어주고 가려주면서 함께 우는 사랑이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