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바닥을 높이다

목사wannabe 2025. 3. 22. 06:46

 

 

3월 22일(토) 사순절 묵상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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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바닥을 높이다

 
 

예수님의 평가는 일관적입니다. 율법으로 자기를 내세우던 시대에 주님은 이웃에게 한 것만이 인정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 작은 자가 도움을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도 우리네 사회는 그것을 꼭 티 내고 규정하려 하는 이상한 경향이 있습니다. 섬김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어야 합니다. 

동정하며 연민을 갖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하는 일입니다. 자칫 그와 나를 격차가 있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일은 차별과 열등을 드러내기에 언제나 세시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편적 복지는 중요합니다. 차등을 드러내지 않게 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동정이나 연민에서 시작하더라도 공감과 인정, 동행과 참여로 나아가야 합니다. 너의 아픔을 적당히 떨어져서 말하지 말고 그 아픔 곁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듣고 함께 행동하는 일들을 만들어 나아갈 때, 우리의 인식과 언어도 조금씩 바뀌어 가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변화는 시혜가 아니라 동행으로 이루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그렇게 약자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죄인들과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신 주님으로 인해 바닥이 달라지고 바닥이 높아졌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이며 올바른 변화입니다.

성경은 유리천장을 깨는 일보다 바닥을 높이는 일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하나만 보아도 그 증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중증 자폐아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해당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의 존엄을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약한 자들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기준으로 우리 삶을 판단하실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중

흘려보내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바닥을 높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흘려보내는 것도 어려워 보이기만 해서 답답하고 야속합니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이 기도이며, 나부터 낮은 곳에서 동행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작은 실천으로 동행을 담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바닥을 높이는 건 복잡하고 지난해 보이지만, 그냥 하면 됩니다. 나부터 시작한 낮은 태도들이 결국엔 당연하게 쌓이고 쌓여 조금 더 괜찮은(?) 바닥이 될 것입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주님이 이미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