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No Turning Back

목사wannabe 2017. 8. 30. 09:06

<No Turning Back>
4. 8. 2017
갈라디아서 4장 9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들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다시/라는 말의 이중성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시 도전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실패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은 용기와 열정이 있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는 것은 나쁜 것이다. 다시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인생은 다시/의 연속일까
하루는 다시 시작한다. 일주일도 다시 시작하고 한 달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삶은 늘 '다시'의 연속이다. 이것은 희망이기도 하고 희망고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어떤 사건이나 날들이 다시 시작하는 소재들이 있다. 매일 같은 사건을 반복한다거나 어떤 특정한 날들로 다시 돌아가는 식의 플롯을 전개하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 이렇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어떤 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후회하고, 또 다른 이는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하면서 성장한다. 오늘을 살아간다면 내일이 다시 올 것이다. 보편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삶은 '다시'의 연속이다.

사도는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외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나쁜 것으로 돌아가버려서 그것이 다시가 되면 나쁜 일이다.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수한 다짐들을 하지만 그 다짐들이 무색하리만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가 버리곤 한다. 새벽에 일어나겠다는 다짐, 다시는 게으르지 않겠다는 결심.. 등등. 이런 인간실존에 사도는 외로운 외침을 던진다. “다시 돌아가서 종노릇 하려느냐??”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사람에게는 죄로 돌아가지 않을 힘이 없다. 어느 정도 수양을 쌓고 도를 닦아도 늘 제자리를 경험한다. 깊은 수련을 한 사람일수록 이 사실을 절대진리로 깨닫는다. 어설픈 사람이 흉내만 내면서 변화를 강조할 뿐, 죄의 세력 앞에서 인간은 이 몸을 입고 있는 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 스스로 나아지는 것은 어렵다. 평생을 갈고 닦아도 어떤 한 순간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사람의 노력이고 결심이다.

은혜 밖에 없다
그래서 사도는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는 것은, 바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죄의 종에서 양자로, 자녀로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칭의. 단 두 글자를 풀어쓰자면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것이 은혜다. 나는 죄를 이길 힘이 없지만 하나님은 나를 아시기에 죄를 이길 새 삶을 주신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에 이끌려 살면서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이 일을 하나님은 은혜로 허락해 주셨다. 믿음으로 성도는 이 길을 간다. 이런 삶의 여정에 “다시"라는 것은 긍정으로 작용한다. 실패해도 하나님은 다시 받아주신다. 그러니 돌아서지 않을 길은 은혜 밖에 없다.

돌아서지 않으리
찬송 중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라는 고백이 있다.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은혜 안에 있을 때 뿐이다. 하나님이 아신 바 된 사람임을 날마다 다시 되새기는 것 뿐이다. 다시를 이기는 힘은 다시 밖에 없다. 반복은 힘이 세다. 그러니 죄의 반복에는 은혜의 반복으로만 대응해야 한다. 돌아서지 않겠다고 다시 고백하라. 은혜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고 다시 고백하라. 십자가를 붙들고 다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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