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세상아 함부로 얕잡아 보지 마라

목사wannabe 2017. 8. 29. 10:18

<세상아 함부로 얕잡아 보지 마라> 31. 7. 2017
갈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백마병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꽃을 흔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에게 열광하는 저들에게 화답하고자 몸을 일으켜 세운다. 순간 등 위에 타고 있던 그가 땅에 떨어진다. 순식간의 일이다.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춘다. 아차… 나는 왕이 아니라 말이었지. 왕을 태운 말. 착각이 인생을 뒤바꾼다. 돌아올 것은 심한 매질과 욕설. 심하다면 죽음 뿐이다. 왕을 떨어뜨린 말. 그 환호가 자기 것인 줄 알고 그것을 누리고자 했던 말. 어쩌면 신앙의 오해가 이렇지 않을까.
왕이 함께 한다는 것은 그의 영광을 덧입는 것이다. 이것을 바르게 인식할 때 존중받는다. 틀리지 않는다. 그 영광이 유지된다. 문제는 이 영광이 내것이라, 내가 누릴 것이라 착각하는 데 있다. 예수 곁의 사람이 될 것인가, 예수를 이용해 나를 높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와 함께 서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매 순간 그와 함께 서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부심이다. 나는 누구 곁에 서 있는가? 나는 누구 곁에 서고 싶은가? 권력자 곁을 맴도는 간신이 많다. 양육강식의 세상에 살면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될 지어다. 성도의 믿음은 사람 곁이 아니라 예수 곁에 서는 것이다. 예수 곁. 이 말은 십자가 옆에 선다는 뜻이다.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내가 십자가 곁을 지켜낼 때, 나는 십자가가 지켜주시는 믿음이 된다. 이 사람은 세상이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짧은 단어의 조합이 담고 있는 의미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가장 감동적인 일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신다. 아.. 이 아득한 감동이란. 나는 누구인가. 예수가 위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나를 위하여 그는 죽고 나는 다시 살았다. 이 헌신적인,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이 나를 향한 사랑이다. 감히 세상이 이 사랑을 막을 수 있을까. 흉내낼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없다. 사도는 이 사실을 가슴에 새겼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고, 이것이 또한 그의 인생이 되었다. 감히 세상이 이 사람을 얕보지 못한다.

사랑 때문에 믿음으로 산다
믿음은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임. 수용.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을 위해서 예수는 자기 전부를 주셨다. 나를 위해서. 기가막힌 논리다. 여기엔 어떤 틈이 없다. 사랑이 믿음으로 살게 한다. 그는 나를 사랑하셔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내 삶을 그가 받으셨고, 나는 이 사랑을 받아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내 삶을 그에게 드리고 그로부터 새 삶을 받았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 삶을. 그러니 이 삶을 누가 얕잡아 볼 수 있을까.

믿음으로 살라
이 말은 너무 흔하다. 너무 흔해서 너무 무시당하는 말이다. 말만 번지르르 하다. 하지만 이것에 따라 인생은 뒤바뀐다.

믿음으로 사는 길
이것은 사랑 뿐이다. 사랑을 받는 자는 건강하다. 사랑이 충만한 내면은 힘이 세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이 사랑을 새기라. 이 사랑을 품고 믿으라. 믿음으로 살라. 말과 삶이 다른 권력자 주변의 간신이 되지 말고, 오직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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