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아내는 힘
<지금을 살아내는 힘> 18. 7. 2017
갈 1장 -11-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자기 길을 아는 사람
사도 바울. 그의 삶은 힘차다. 글의 문맥마다 힘이 실려 있다. 사도는 자기 존재의 이유와 인생의 사명을 깨달았다(16). 이방인의 사도. 그는 이 길을 깨닫고 이 길로만 달려 간다. 타협은 없다. 기웃거림도, 의심도 없다. 매맞아도, 잡혀가도 오직 한 길로 달려간다. 사명의 깨달은 자의 힘이다.
자기 길을 모르는 사람
하지만 자기 인생의 사명을 “알고” 가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많지 않다. 대부분 현실에 쫓겨 살지, 사명, 비전 같은 고상한(?) 삶을 살지 못한다.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아도 버거운 삶에 숨이 차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삶에는 “흥"이 없다. 재미가 없으니 힘도 없다.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삶의 이유는 내 길을 알아야만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는 삶의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도 생명의 근거를 아는 존재다. 그러니 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 된다. 사명은 몰라도 은혜는 알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 내 생명이 내것이 아니라 십자가 은혜로 받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십자가 은혜. 성도는 이 사실을 믿는 자다. 이것으로 산다. 그러니 희망이 있다. 나를 주님이 살리셨기 때문이다.
지금을 산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는 성도의 삶은 희망적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가는 길은 잘 모를 수 있어도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몰라도- 지금을 주님의 십자가로 살아내는 것, 은혜 안에서 삶을 성실히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삶의 근거, 삶의 총체적인 방향은 이것이다. 십자가. 이 전체 방향이 바르게 세워지면 그 다음에야 구체적인 내용이 채워진다. 바울은 이 고백의 중심에 서 있다. 이 복음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바울의 삶은 십자가가 먼저였고, 이방인의 사도는 그 다음에 채워졌다. 그래서 고백한다. 16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지금을 십자가로 산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지금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보다 먼저 지금십자가로 정립되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무엇을 하든 이것에서부터 바른 신앙이 시작된다. 그리고 십자가를 근거로 둔 인생은 그 길이 어디이든 의미를 발견한다. 주님은 바로 그 길, “지금” 안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오늘을 십자가로 살자. 오직 십자가로 살자.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십자가 안에서.
말을 하더라도 주의 십자가 안에서.
오직 십자가 안에서. 그 은혜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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