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이 아니라 온전
5월 31일(금) 한 구절 묵상
열왕기상 22장 43절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열왕기상 22장 43절
완전이 아니라 온전
열왕기상 22장은 여호사밧과 아합에 대한 비교 평가입니다. 역대기와는 다르게 열왕기는 여호사밧의 공적을 거의 다 생략하고 간략한 평가만을 제공합니다. 더군다나 열왕기의 평가는 야박하기까지 합니다. 왕들의 모자란 점들을 콕 집어서 걸고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43). 열왕기서의 이런 의도적인 평가는 건강한 신앙의 바른 길잡이가 됩니다. 건강한 신앙은 완전이 아니라 온전한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고 삶이 피폐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완벽에 대한 강박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완벽한 존재를 강요하는 것 같습니다. 연예인, 아이돌, 또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은 가혹하리만치 엄격하고, 그런 기준을 일상에 투사하면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약점은 감추고 강점만 내세우는 허세가 가득합니다. 약점을 인정하지 못해 그것이 들통나버리면 나락에 떨어진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약점을 감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점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더 감사한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약점 많고 심지어 죄가 많은 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99가지를 잘했는데도 잘못한 하나를 짚어냅니다. 성경의 이러한 평가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실체를 바르게 인정하고 더욱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신앙의 실존을 깨닫게 합니다. 여호사밧은 장점이 많은 왕입니다. 남유다 역사에 손꼽을 수 있는 선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고(43) 실패도 있었습니다(48). 북왕국 아합과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 화평을 이루긴 했지만,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49). 이러한 성경의 평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란 완전히 아니라 온전이라는 점입니다. 약해도 괜찮습니다. 실수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물론 잘못된 것은 꾸준히 바로잡아야 하겠고 날마다 죄에 승리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죄 없이 사는 것은 정말 불가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함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깨지고 상하고 못나도 여전히 하나님 앞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 온전한 신앙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바리새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말씀을 가지고 타인을 정죄했는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완벽을 가장한 거짓과 가식, 종교적 폭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이 아니라 온전입니다. 부족하고 약해도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내어드림으로 구원을 누립니다. 오늘이 온전한 날이기를, 내 약함과 내 아픔을 기꺼이 주님께 내어드리는 온전함이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