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때는 없다
5월 27일(월) 한 구절 묵상
열왕기상 21장 29절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21장 29절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열왕기상 21장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이들에게 내려진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에서 피를 흘리게 했던 것처럼 그들도 나봇의 포도원에서 피 흘려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이 말을 듣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아합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그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29). 아합은 진짜로 회개한 것이 맞을까요?
열왕기가 담아내는 아합의 내러티브 중 나봇의 포도원 플롯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입니다. 이런 말씀은 난해합니다. 하나님이 아합의 회개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실컷 죄를 짓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면 다 용서받는 것 같고, 그렇다면 굳이 지금 회개해야 하는지, 회개를 미뤄두어도 되는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 몇 가지를 정리해야 하는데, 먼저는 나봇의 포도원 플롯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아합은 전쟁으로 죽게 되고 그의 피를 씻어낸 물을 개들이 핥아 먹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재앙 유예 선언입니다. 말씀 구절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아합의 심판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내릴 재앙을 미뤄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므리 왕조의 멸망이 조금 늦춰진 것 뿐입니다. 하지만 회개의 삶을 이어가지 못한 아합은 결국 말씀대로 심판받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것은 아합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심판의 말씀을 전해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27)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는 회개에 대한 구약적 표현인데,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지 못해 금식했던 아합이 이제는 말씀 앞에서 금식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아합을 하나님은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라며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29). 하지만 아합의 회개는 오래가지 못했고, 그는 심판의 말씀대로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말씀의 초점은 아합의 회개가 아니라, 이런 얄팍한 회개라도 받아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받아주십니다.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이미 문밖에 서서 집 나간 아들을 향해 언제라도 달려나갈 것입니다.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없습니다. 죄는 이미 용서하셨으니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늦은 오후 5시여도 품꾼을 찾으시는 분이 우리 하늘 아버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더 늦추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늦은 때는 없지만 얄팍한 계산으로 더 늦추려 한다면 결국 아합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