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착시 현상
5월 23일(목) 한 구절 묵상
열왕기상 20장 13절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신앙의 착시 현상
반복되는 아합과 벤하닷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승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3). 왜 하나님은 아합과 이스라엘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승리를 주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우리의 불편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이를 신앙의 착시 현상이라 말합니다.
감수성과 진정성을 예리하게 분별해야 하는 것처럼, 현상과 목적도 분별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그 현상에 담긴 목적을 분별하지 못하면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착시 현상과 같습니다. 착시라는 것은 눈의 착각입니다. 시각의 이미지와 실제가 다르지만 교묘하게 뒤틀린 이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각적 착각입니다. 착시를 이용한 마술이나 트릭 아트도 유행이어서 재미있습니다만, 신앙의 착시는 재미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왜곡되어 바르지 않은 신앙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합처럼 말입니다. 벤하닷 왕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침공했지만 아합의 소수정예군에게 크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서는 이 승리가 아합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음을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3). 이 승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아합왕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고 아합과 북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바르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이 될 것만 취할 뿐,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는 않습니다. 바로 여기가 신앙의 착시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주시는 걸 보니, 이 정도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눈에 드러난 현상과 그 현상에 담긴 목적을 깨닫지 못하면 착각합니다. 현상에 머물러 적당히 타협하거나 순종을 미루고 죄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또는 하나님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것은 위험합니다. 예리한 자기 분별과 성찰이 무뎌지고 점점 더 순종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승리는 아합이 괜찮아서가 아닙니다. 불순종하는 아합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아합에게 주신 승리는 아합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의 표현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거기에 담긴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명확하게 다 알 수는 없지만 믿음의 성도가 현상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기준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입니다. 내게 주신 십자가의 길에 순종한다면 현상에 속는 착시는 대부분 걷어낼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고 내 은밀한 죄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게 십자가가 있다면, 확고한 기준인 십자가가 있다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