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구절 묵상

묵상/기도의 효용성

목사wannabe 2024. 3. 22. 05:29

 

3월 22일(금) 한 구절 묵상

시편 59편 13절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끝까지 알게 하소서 (셸라)

 

 

시편 59편 13절

기도의 효용성

시편 59편의 표제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에 사람을 보냈을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반복되는 생명의 위기 속에서 다윗은 처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악인의 심판과 저주를 구합니다.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끝까지 알게 하옵소서"(13). 다윗의 억울함이 절절하게 베인 간구입니다. 

시편의 탄원시에는 저주의 내용이 가득합니다. 악인을 향한 표현이라 하지만 대놓고 공격적인 언사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효용성에서 볼 때, 하나님이 과연 이런 저주를 기도로 판단해서 들어주시는지, 실제로 이런 기도가 응답이 되었는지도 문제가 됩니다. 이런 복수심과 저주가 기도일까요? 기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다른 종교적 기도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기도는 응답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결과는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끈끈한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응답에 목적을 둔 기도는 주술이나 주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요구를 실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마음을 나누시고 생각을 섞으면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런 이해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마주함이고 고백과 대화이며, 때로는 토론, 논쟁, 합의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저주와 심판의 탄원은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억울함을 토해냅니다. 가득한 복수심을 쏟아냅니다. 이는 당장 그렇게 해 달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정적인 것들을 쏟아내고 비워냄으로써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강과 신뢰를 다시 채우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강렬한 저주를 쏟아낸 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15). 저주가 이루어져서 이렇게 찬양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비워낸 그 빈 자리에 하나님을 향한 단단한 신뢰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처럼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비움과 채움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응답에 효용성이 있지 않습니다. 참된 기도는 내 속의 어두운 것들을 다 쏟아내고, 다시 하늘의 평강과 약속의 신실함을 채워내는 것입니다. 해서 기도하는 내가 달라지는 것이며, 기도한 후에 나 자신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늘 뜻이 내게 담겨져서 내가 딛고 선 이 땅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올바른 효용성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이게 될까? 하지 말고, 내 신음소리를 놓치지 않는 아버지께 마음을 쏟아내십시오. 그래야 내가 삽니다. 내가 살되 악이나 깡이 아니라, 여전히 믿음으로 살고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온전히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아픔을 비워내고 약속을 채우는 기도가 오늘, 지금이어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