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무지한 사람들
2월 3일(토) 한 구절 묵상
마가복음 11장 33절
이에 예수께 대딥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33절
무지한 사람들
성전 정화 사건 이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께로 와 질문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행동을 합니까? 이들은 당시 유대교의 핵심 인물들입니다. 성전을 고수하고 제사와 율법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주님이 되물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30) 권위를 내세우며 따지는 이들에게 주님은 권위로 답해보라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대답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33)였습니다. 알아도 알지 못하는 자들. 하늘의 뜻이 정말 무지한 자들의 실상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명제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화의 기저에 자리 잡은 핵심입니다. 근대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과학과 의료, 정보는 우리에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서 베이비부머 세대는 평생을 전례 없는 변화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전쟁 이후 산업화, 도시화와 정보혁명, 그리고 인터넷과 AI까지,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정말 모르는 게 없는 세대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경험한 것이 그토록 많은 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세상인데 무턱대고 다 안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역술가나 무속인이 그렇고, 이단이 그렇습니다. 속상하게도 교회도 그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 안다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혹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 교회가 있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죄인은 하늘의 뜻을 다 알 수도 없고 감히 헤아려볼 수도 없습니다. 하늘의 뜻으로 산다는 이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 안다고 했던 이들이 예수님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핵심 인물들이었는데, 다 아는 것처럼 굴던 이들이 정작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리스도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는 아이러니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이들은 아주 지혜로운 것처럼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간사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진실입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꿰고 있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늘의 문법을 모릅니다. 문법을 모르니 뜻을 모릅니다. 보아도 알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이의 할 일은 구하는 것입니다. 알기를 구하는 게 아니라, 믿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르는 것을 살게 하고, 살면서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알려주신 말씀과 복음과 구원으로 살기를 간절히 구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위대한 하늘의 비밀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해서 지금 믿음으로 사는가, 믿음을 구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